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24일 독일에 체류 중인 손 고문은 형수상으로 잠시 귀국해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대표님의 혜안이 필요하다" "국내정치가 가을이 되면 어찌될지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건냈으나 손 고문은 "그냥 쉬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간 손 고문은 10월 초순경에 귀국해 10월14일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손 고문의 짧은 방한이 있은 후에 모 언론에서는 그의 10월 재보선 불출마 결심설을 보도했다. 그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기우 전 의원에게 열심히 준비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전언이다. 새누리당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의 빅매치설까지 나돌았던 상황에서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전망은 정가의 관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메이저 언론에서는 그를 비중있는 인사로 다루고 있는 형편이다. 대법원의 선고에 따라 경기 수원을, 경기 평택을 등 그의 지지세가 큰 수도권 선거구들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손 고문의 짧은 귀국을 두고 주목할 점은 세가지다. 안 의원의 갑작스러운 구애와 그의 뜨뜻미지근한 태도, 그리고 항간에 도는 그의 재보선 출마설이다.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이사장의 돌연 사퇴로 수세에 몰린 안 의원의 입장에서는 중량감 있는 인사를 영입해 자신의 신당에 대한 무게감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 안 의원의 지난 24일 장례식장에서의 발언은 지난 대선 때부터 나돌던 '안-손 연대설'을 구체화하기 위한 포석이지 않은가 하는게 정가의 해석이다. 과연 손 고문이 안 의원의 러브콜을 받아드릴까. 孫잡을까. 회의적이다. 안 의원이 옛날만큼 입질을 하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소리다. 침묵은 혹자에게는 카리스마로 혹자에게는 유유부단으로 느껴진다. 과거 3김의 침묵은 일종의 카리스마였다. 정치인들은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무겁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따랐다. 안 의원의 침묵은 일종의 우유부단으로 느껴졌으리라. 대선이 끝나면 신당이 구체화되고 자신들에게도 뭔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뜨거운 겨울이 지났지만 정작 안 의원은 한발짝 앞으로도 한발짝 뒤로도 가지 못하고 늘 그 위치에 있었다. 실망하리라는 것이 당연지사다. 최 이사장의 사퇴는 안 캠프 진영에서의 작은 움직임들을 대변하는 커다란 상징이었다. 안 의원이 수세에 몰린 것이다.
손 고문은 뜨뜻미지근할 수밖에 없다. 안 의원이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판도 열렸다. 김한길 대표의 리더십 부재다. 당내 전략통으로 불리며 친노와 구민주계열을 중재할 중도의 리더로 급부상한 김 대표는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등 잇단 호재 속에서도 수세에 몰리고 있다. 강경파의 등에 떠밀려 거리로 나섰지만 회군할 명분도 없어졌다. 대통령도 만나주지 않고 진실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으며 자칫 '핫바지'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10월 재보선 이후 조기전대설이 불거질 것이다.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할 것이다. 손 고문의 10월 귀국이 절묘해지는 타이밍이다. 강성친노로는 국민의 신망에 가까울 수가 없다. 중도우파의 이미지가 필요한 민주당으로써는 손 고문이 달짝지근해질 것이다. 시일이 지날수록 당은 더욱 그를 원할 것이다. 제1야당의 대표 혹은 '그림자 대표'로 화려한 복귀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간판도 내걸지 못하고 있는 안 의원에게 화끈할 순 없다. 뜨뜻미지근한 것이 당연하다.
재보선 출마설은 호들갑에 가까웠다. 눈앞의 일보를 막기 위한 기자들이 손 고문을 눈앞만 보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난 오랜 정치경험을 무시하는 처사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손 고문이 요새 독일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견학할 때마다 두툼한 대학노트에 내용을 쓰고, 각종 수치도 외울 정도로 열성이란다. 손 고문이 왜 독일에 빠졌을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입장에서 독일을 가장 매력적인 벤치마킹 대상이다. 인구 8200만에 357㎢의 국토면적을 가진 독일은 인구 8000만에 220㎢의 국토를 가질 통일한국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았다. 유럽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해 역사적으로 각종 외침과 소요가 많았던 지정학적 위치는 동북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반도와 닮았다. 2번의 패전 속에서도 다시 국가를 일으켜 유럽의 맹주가 된 그들의 모습은 '한강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극심한 경제적 격차 속에서도 큰 무리 없이 통일을 이뤄낸 독일의 모습은 통일한국이 바라봐야할 지향점이다. 손 고문이 바라본 독일은 그런 모습이리라. 고작 국회의원을 하려고 독일을 공부했다면 헛공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잠룡으로 불린 그의 마음 속은 이미 통일한국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독일식 모델에 대한 학습을 통해 통일리스크 없이 아시아의 호랑이를 깨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보다 지방선거를 염두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의원은 활동폭이 제한된다. 당권을 장악하고 당대표로 나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견제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것은 대통령 후보로써는 후자의 책략이다. 당대표는 여당 뿐만 아니라 자기 당내의 반대파와도 싸워야 한다. 여론의 관심을 받는 자리이고 당이 기울기 시작하면 밥그릇을 염려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우면 모르겠으나 아직 한참이 남았고, 더욱 큰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 외로 너무 잘하고 있다. 내치는 아직 효과를 못보고 있지만 외치(외교·안보)는 박수칠 만하다. 박 대통령표 외치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4대강이나 새만금 등 추후 문제가 될 대형국책사업을 벌이지 않고 있으니 큰 반대여론 받을 일도 없다. 그가 늘 그랬듯 100점도 아니고 0점도 아닌 50점 정치를 국정에서도 보여줄 것이다. 큰욕 안먹는 정치를 할 셈인데 어찌보면 좀 어렵기는 하지만 무난하리라는 예상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만 잘 마무리되면 스캔들날 일도 없다. 싸우기 버거준 존재인 것이다. 포격전에서는 한참이 한수위다. 더욱이 권력도 그의 손에 있다.
손 고문은 지방선거를 통해 '각개전투'를 하는 것이 대통령 행보에서는 유리하다. 서울은 박원순 시장이 버티고 있으니 출마하려면 당내경쟁을 해야 한다. 반대파를 늘리는 것이다. 경기는 무주공산이다.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선거에 나섰었지만 김문수 지사에게 패배했다. 더군다나 그는 이석기 사태에 대한 일종의 책임이 있다. 과거 경기지사를 지낸 경력이 있는 손 고문에게는 경기지역 국회의원보다 도지사가 오히려 달콤하다. 도지사 4년을 지낸 후엔 중도사퇴 없이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적확하다. 4년 동안 합법적으로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사는 곳이다. 경기권에서는 남다른 입지를 가지고 있다. 또 보수우세인 분당을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당선될 만큼 보수층에서도 그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다. 당권은 크게 무리없어 보인다. 김 대표의 리더십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상태다. 김부겸, 원혜영, 송영길, 박영선, 양승조 등 친손학규계 인물들이 당내 많이 있다. 적당한 사람을 내새우면 그 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새누리당 지도부처럼 불편해지지만 않으면 된다. 손 고문이 경기지사를 잡을까 국회의원을 잡을까 아니면 우유부단한 안 의원처럼 4년동안 잠수를 탈까. 두고볼 문제다. 필자는 경기지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가장 최선의 책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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