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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슬금슬금 떠오르는 '2008 촛불의 추억'

 

  이틀여 짧은 휴가를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이 작심을 했다.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해 곽상도 민정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이 물갈이 됐다. 신임 비서실장의 자리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다.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 서울대를 나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3선의 국회의원 경력을 지낸 베테랑이다. 물론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 동 장학회 학생들의 모임인 '삼청회' 회장을 지냈으며 풍문으로 떠도는 박 대통령 조언그룹인 '7인회' 핵심맴버다. 관가와 언론에서는 '王실장'이 등장했다며 너스레다. 그도 그럴것이 1987년 김 실장이 법무연수원장으로 있을 적에 정홍원 국무총리가 기획과장으로 보직했었다. 정 총리를 김 실장이 추천했다고 설왕설래할 법한 일이다.

 

  다음으로 눈여볼 곳이 정무와 민정라인이다. 이정현 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두달여 공석으로 있던 정무수석에는 박준우 전 EU대사를 임명했다. 박 수석은 경기도 화성 추신으로 중동고와 서울대를 나와 외무고시에 합격, 외교통상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민정수석에 임명된 홍경식 전 법무연수원장은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고검 검사장 등을 지냈다. 이번 청와대 인사를 두고 눈여겨봐야할 점은 두가지다. 서두에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홍경식 민정수석이다. 정국을 타개하고자 두 종류의 카드를 꺼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째는 그럭저럭이고, 둘째는 실패한 카드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데는 국정장악력을 더욱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정 총리보다 연배가 다섯살이나 많고 법조계 선배로써 김 실장의 현재 위치는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총리보다 앞섰다는게 평이다. 총리보다 자주 앞서는 모습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자주 등장한다. 원조친박의 등장으로 국정 2인자가 슬그머니 자리를 빼앗긴 셈이다. 사실상 정 총리에 대한 상징적인 경질이다. 정권 초기라는 상황을 감안할 때 총리를 바꾸기에는 정치적 무리수가 크다. 국정을 문제없이 이끄는 그의 관리형 기질은 버릴 수 없는 장점이다. 반면 허태열 실장은 말실수도 많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허태열 카드를 버리고 총리는 바꿀 수가 없으니 총리 보다 더한 王총리를 모셔다 국정을 온전히 손아귀에 쥐려는 것이다. 국정을 온전하게 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몇몇 정권에 반하는 내부의 적에 대한 엄중경고다. 김 실장의 등장으로 관가가 바짝 쫄아있는 상태이니 이미 한 종류의 카드는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정무-민정라인은 실패라고 판단된다. 총리는 살림을 하는 사람이고 비서실장은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사람이니 중요성은 말을 더해봤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들이 정무와 민정이다. 정무수석은 부드럽게 하는 사람이고, 민정수석은 단단하게 하는 사람이다. 정무는 온갖 사람을 만난다. 야당도 만나고 여당도 만나고 각료도 만나고 시민단체도 만나고 이슈가 되는 모든 곳에 감초처럼 녹아 있어야 한다. 민정은 표독스러워야 한다. 대통령 친인척부터 각료에서 여당 당직자들, 행여 정권에 먹칠한 여지가 있어 보이는 암초를 찾아 파내고 자리를 매워 정권이 순탄하게 달리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정무-민정라인이 실패한 이유는 한가지다. 어울리지 않은 사람을 앉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강점인 외교로 국민의 신망을 얻어보려 하지만 정작 국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의 민정은 너무 딱딱하다.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현 시대에 맞는 민정감각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그 문제성은 2008년 촛불을 통해 점쳐볼 수 있다.

 

  2008년 정치가 촛불에 온전히 굴복했던 가장 강력한 이유는 명확한 정무적 판단의 부재다. 여지가 있는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종북세력과 일부 극단적인 진보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선동이며, 정부는 지난 군사정권이 보여줬듯이 무력을 동원한 폭력적인 진압을 통해 사태를 무마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정무라인의 오판이 촛불바다를 만드는 시초였다. 대통령 마저도 국민들이 싼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중에 가면 본인의 정치적 판단을 동조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믿음이 정권 초기의 국정의 신뢰성을 갉아먹었다. 굳이 키우지 않아도 될 촛불을 더욱 키운 셈이다. 거기다가 경찰청장이 최루탄 물대포를 발포하고 그것에 맞아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심지어 실명하기도 했다. 정권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한 가지 생각 밖에 못하고 한 가지 판단 밖에 못해 생긴 비극이다. '20008년 촛불 트라우마'는 재현될 조짐이다. 그 조짐의 가장 큰 판단척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정권의 외골수성에 있다.

 

  촛불이 앞으로 더욱 커지지라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김한길 대표의 거취문제다. 당내 강경파에 밀려 거리로 내쫓기듯 나오긴 했지만 대표인지라 뭐든 보여줘야 되고 막상 나온 김에 성과가 있어야 한다. 자칫 김 대표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장 강경파에 의해 당이 두쪽나고 두쪽난 민주당을 안철수 의원이 맛있게 먹을 우려도 있다. 영수회담을 하자 말을 던져 놓고 3자회담도 안된다 5자회담도 안된다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서 결판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안한 CEO인 김 대표는 민주당의 주주들에게 무언가 성과를 보여야 그의 생명력이 지속된다. 강경파를 잘 다독여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얻는데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의 신망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결코 김 대표는 장외집회를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하면 그로써는 스스로 사직서를 쓰는 셈이다.

 

  한가지 더 덧붙이는 이유로 국민의 달라진 생각을 들 수 있다. 예전처럼 사상을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 촛불집회에 나온 많은 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말처럼 내 아이 내 가족에게 보다 안전한 나라, 보다 깨끗한 나라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왔다. 언론이 촛불을 감추고 자발적으로 거리를 나온 사람들에게 '동원된 자'라는 낙인을 찍어도 헛수고다. 감춰진 모든 것들은 인터넷 속에 온전히 있다. 1인미디어들이 숨가쁘게 현장을 오가며 영상과 기사로 소식을 전하는 세상이다. 곧 추석 명절도 다가온다. 민족대융합의 시기다. 지방 사람들은 모르겠지 하지만 친지와 친지가 만나 말을 섞다보면 쉬쉬 하던 것이 전국에 확 퍼져버린다. 사안이 심각하기에 더욱 솔깃하다. 국익을 보호해야할 국가정보원이 심리전단을 만들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인 셈이다. 지난 역사에 있었던 도청사건이나 북풍, 총풍 등 각종 정치공작에 버금간다. 자칫 부정선거 시비로까지 가면 정권의 정통성이 위협받는다. 가장 무서운 세번째 이유는 여기있다. 정권의 정통성에 위해를 가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그들에 의해 이슈는 재생산되고 확전될 요인이 있다. 민주당이 어시스트를 한 셈이고 그 세력들은 멋지게 골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권은 이를 눈여겨 봐야 한다.

 

  얽히고 설킨 현 시국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정무라인의 강화밖에 없어 보인다. 만약 현 정권에 정무라인이 온전히 살아 있었다면 남재준 국정원장이 NLl대화록을 공개하면서 불 붙은 국회에 휘발유를 붓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왕 임명한 정무수석은 본래 취지에 맞게 해외외교의 선봉으로써 역할을 하게 하고 정무장관을 부활시키는 것이 수다. 현 총리는 정무감각이 떨어지는 편이고 王실장은 연세 만큼이나 고루해서 제대로된 정무적 판단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왕 정무장관을 만들 것이면 부총리급도 괜찮다. 야권 출신 인사가 적확해 보인다. 여태껏 정권의 수차례 옷을 바꿔 입으면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많은 손실을 봤다. 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비롯해 갈등중재역할을 하는 모든 기관을 망라하게끔 권한을 주고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끔 해야 한다.

 

  그 첫번째 판단은 지금 불타는 촛불에 관한 것이다. 언제 화약고가 터져 인왕산을 덮칠지 모를 일이다. 야당은 작심을 했고 국민들도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 나팔수들이 만들어내는 여론조사 따위를 믿으면 현 정권도 전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촛불이 단지 선동정치의 변화된 형태라고 믿으면 정권이 초기부터 몰락행 열차를 탄다. 두번째 판단은 언제라도 눈을 감고 김무성과 권영세를 내줘야 한다고 직언해야 한다. 야당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은 진실을 원하고 있다. 행여 감춰진 진실이 정권에 불리하다면 누군가 총대를 매줘야 한다. 음참마속을 하듯 음참무성을 하고 음참영세를 해야 한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소용없다. 관보 수준의 언론 보도를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고 왜 촛불이 뉴스에 등장하지 않느냐며 의아해한다. 세번째 판단은 정권의 정통성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짓게끔 묘수를 짜는 것이다. 여야를 만나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아 책임 소재의 범위를 가리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 김한길 대표도 뭔가 정권으로부터 받을 것이 있다. 그 꼭짓점을 찾으면 정무가 성공하는 것이고 사태가 마무리된다. 슬금슬금 2008년 촛불의 추억이 떠오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박 대통령은 훌륭한 정무적 판단을 해줄 인재가 필요해 보인다. 정국은 이미 갈 때까지 갔다. 승리와 패배만 남았다. 패배없이 정권의 정통성을 온전히 지키는 일에 대해 박 대통령은 저도에서 어떤 계획을 세워놨을까. 만약 그 혜안이 해외외교형 정무수석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박수치고 퇴장이다. 내리막길에 닿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