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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우리들의 찌그러진 영웅을 말하다


  이 평론에는 주어가 없다. 주어가 없다는 말은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대상이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 담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 담론을 기꺼이 써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한 시절의 영웅이자, 지금은 누군가의 영웅인 그 사람을 지금부터 가상의 이름은 트렉터B씨라고 부르겠다. 나는 트렉터B씨에 대한 가공의 글을 쓰고 있다. 가공의 글을 쓰고 있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현실 속의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다. 모든 현실은 아바타의 꿈을 뿐이다. 서론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 가공의 현실에서 트렉터B씨는 영웅이다. 물론 내 가공의 현실이지만, 내가 영웅삼고 싶은 인물은 아니다. 나는 그를 증오하기에 현재부터 증오의 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굳이 이렇게 가공이라는 설정과 주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은 대한민토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받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표현의 자유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인권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천부적으로 모든 사람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대중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은 공인으로써 대중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수용해야 한다. 고소고발을 일삼는 것은 스스로가 비루한 촌로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난 그의 소설에서 그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 흔한 "찌그러진 영웅"에서부터, 대하드라마 "삼국전기까"지 그가 남긴 혹은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은 그것 뿐이다. 하나더 덧붙인다면 드라마로 만났던 "젊은 날의 초삼" 그것 뿐이다. 그는 많은 글을 써왔고 많은 상을 받아왔지만 그가 나에게 남긴 거라곤 비루한 가십거리 뿐이다. 성인이 되어서 만난 그는 참 말 많은 사람이었다. 얼마전에는 인터넷이 쓰레기라는 둥, 촛불은 떼불이 된다는 둥, 말도 되지 않는 노망난 소리를 찌껄여 작가 생명이 끝난 줄 알았었다. 반면 이왠수 선생은 늙은 얼굴로 꼴사납게 "하악하악"소리 치지만, 그의 애로틱한 자태는 늙은 나이에도 섹시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생물이다. 고로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반면에는 작가 고유의 감성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둘 사이를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역사적인 문호가 되는 것이고, 첫째만 해내는 사람은 귀여니스트, 둘째만 해내는 사람은 그냥 묘비에 쓸 명문이나 적는 사람일 뿐이다.

  트렉터B씨는 공산주의를 협오한다. 공산주의와 더불어 사회주의도 협오한다. 반면 자유주의, 시장경제, 권위주의는 자신의 생명력으로 느낀다. 내 그런 것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오이티푸스적인 증오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는 내 가공의 세계에 있는 트렉터B씨이다. 트렉터B씨는 "찌그러진 영웅"에서 결국 우리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것은 트렉터B씨와 같이 변화에 소외되고, 권위에 복종하게된 변절자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것들이 대중에 의해 변화된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역사의 법칙을 거부하고, 자기 안의 고치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였다. 이 모든 선택과 협오는 문단의 두에서 말했듯이 빨갱이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적인 증오에서 기인한다. 그는 자신을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게한 월북인 아버지를 증오하고, 또 자신의 가정사를 파탄나게 한 그를 협오한다. 이런 증오와 협오는 당연 공산-사회주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나아가서 내 가공의 현실 안에서 공산-사회주의와 그래도 더불어 살아보려는 자들에 대한 혐오로 확대된다. 처가 싫으면 처가집 개새끼도 싫듯이 공산-사회주의가 싫으면 추종자와 협력자 모두를 증오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무책임하게 한마디 더 덧붙이면 이 모든 건 공산주의자인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차라리 그가 없었으면 좋았을 뻔한 생각도 해본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내 가공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불도저가 되지 못한 트렉터B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의 글을 읽을 만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차라리 시트콤을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대의 문호에게 그런 말이 어울립니까?"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웃음이라도 주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겠다. 사람들은 그에게 보수주의자라는 칭호를 수여한다. 그러나 그는 보수를 가장한 자기합리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반 공산-사회주의자일 뿐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신봉도 없을 뿐더러, 그저 작품 내내 허무주의적 안개만 깔아놓기 바쁘다. 그래서, 그대가 더욱더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그를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그를 가까이 한다면 그와 같은 오이디푸스적 신드룸에 빠지거나 혹은 자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written by NapSap, http://cocc.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