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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연탄


▶ 내 이름은 구공탄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구멍이 아홉개가 있어 구공탄이라 불렸다. 세월이 흘러 열아홉개로 삼십이개로 다시 이십이개로 이십오개로 구멍이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공탄이라 불린다. 입에 익숙하니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구멍탄'이라고 제대로 고쳐 불러주는 것이 맞다. 구멍 수가 다른 이유는 내 재료인 석탄 산지에 따라 성분이 다르고 그에 따라 화력에 차이가 있어 그렇다. 당연히 구멍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탄다. 보통 중부지역에서는 22공탄, 대구 이남과 전남에서는 25공탄을 쓴다. 한국산업규격(KS E 3731 구멍탄, KS E 구멍탄, 시험방법, KS ㄸ 3707 석탄류의 발열량 측정방법)에 따르면 나 한장의 발열량은 4600킬로칼로리다. 지난해 생산비용 647원에서 정부보조금을 제외한 나 한장의 생산가격은 373.5원이었다. 여기에 운반비와 마진, 기타 잡비를 붙이면 장당 약 500원 가량이 된다. 등유 1리터가 지역에 따라 1300원~1500원 하는 것을 감안하면 1원당 11.82킬로칼로리의 열량을 내는데 나는 고작 1원당 9.2킬로칼로리밖에 내지 못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나는 서민들에게 가장 따뜻한 불씨다.

 

▶ 나의 또다른 별명은 '年例의 부엌死神' 이었다. 해마다 겨울을 나지 못하고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참 많았다. 우리 산하가 벌거숭이던 시절, 산림녹화를 하며 정부가 나무 대신 떼게끔 하면서 오랜 온돌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안전시공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방구들 사이로 피어 오르는 연탄가스에 일가족이 사망하거나 혹은 중태되는 일들이 빈번했다. 해마다 일어나는 사고의 65%가 부실한 온돌 때문에 생겼다. 연탄가스사고의 원인은 일산화탄소다. 일산화탄소가 사람 몸에 들어오면 두통이나 귀울림, 현기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메스꺼움과 구역질을 동반하다가 혼수상태에 이르러 사망한다. 일산화탄소는 사람 몸 속에 들어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카복시 헤모글로빈을 만든다. 카복시 헤모글로빈은 보통의 헤모글로빈보다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진다. 고로 서서히 숨을 끊어져 죽게 되는 것이다. 처참한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겠지만, 별 고통없이 서서히 죽어가기에 요새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힘겨운 삶을 닫으려는 사람에게 마지막 불씨가 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 나는 사람들의 등짝만 따뜻하게 하는게 아니라 입도 즐겁게 한다. 가로마다 걸려있는 연탄구이집에는 내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나 생선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게중에는 꼭 연탄구이만 찾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나 숯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나무가 썩고 압력에 숙성돼 만들어진 석탄으로부터 나왔고, 숯은 나무를 잘 태워서 만든다. 나나 숯이랑은 외사촌벌은 되는 셈이다. 사람들은 연탄구이를 칭송하는 말로 여러가지 분석을 내논다. 액체나 화학연료는 구울 때 주변의 수분을 빼앗는데 고체연료는 그렇지 않아 육즙이 많다는 소리도 있고, 불 위로 떨어지는 지방이 타면서 발생하는 연기가 훈연효과를 낸다는 추측도 있으며, '年例의 부엌死神'인 일산화탄소 특유의 향취라는 설도 있다. 공포스러운 분석이다. 사실 그보다는 추억을 찾는 '입맛의 회귀'가 더 맞겠다. 없이 살던 시절 숯이 어디있고 흔한 가스불이란게 구경이나 했겠나. 나무를 잘라 떼면 관청에서 혼낼테니 가장 만만한 내가 그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몸을 달군 것이다. 오손도손함도 한몫 했겠다. 무언가를 구워먹는 것이 사치이던 시절이니 행여 그런 기회가 있다면 머리를 들이 밀으면서 서로 '연소의 자태'를 보려 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팍이 따뜻하다. 서민들 마음 속의 추억의 불씨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고 호통치던 '연탄시인' 안도현은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는 멋진 시를 남겼다. '연탄 한 장'이라 이름 붙은 이 시는 가수 안치환에 의해 또 한번 멋지게 불려졌다. 내가 '이듬해 봄 눈 녹을 때까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타오른 단다. 시인은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하지 못했나 보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이라며 '눈 내려 세상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인이 아름답게 노래한 내 삶은 그리 가열차지 않다. 아궁이 속에서 반나절 몸뚱이를 불태우다 차가운 화석이 돼 거리에 버려져 누군가의 발길질을 당해야 하는 형편이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너무 두려웠다. 누군가가 나를 의인화해 불러도 대꾸 조차 하지 않았다. 입이 9개 있을 때나 22개 있을 때나 말없는 무생물이었다. 한덩이 재로 남겨질 것 같으면 스스로 불씨를 꺼버렸다. 세상을 향해 아궁이를 닫아도 자꾸 들춰보는 사람들 때문에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은 왜 저 연탄은 타오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그래 봤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내 본디 모습처럼 연탄이 되어야 겠다.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온몸으로 사랑하며' '나를 산산이 으깨' 길을 만들어야 겠다.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불씨가 되어야 겠다.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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