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동자승

 

 

▶ 동자승은 애절하다. 철이 들기도 전에 머리가 빡빡 깍여서 반스님대접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얼굴 찌뿌리는 일도 많겠다. 한창 어릴 때라 맛있는 것 먹고 싶은 마음이 많겠다. 대부분의 동자승들은 절에 들어오기 까지 사연이 기구하다. 버려지거나 버림받거나 하는 그런 류다. 그러다 엄격한 불도의 길에 들어서서 머리를 자르고 출가를 한다. 출가를 두번 한 셈이다. 불가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이 몇이 있다. 고기를 구우면 온 절간에 기름냄새가 가득이다. 그러기에 어쩌다가 육식을 할 참이면 굽는게 아니라 삶는다. 삶으면 덜하다. 살육을 엄히 하는 풍토탔에 그런 습관이 생겼다 한다. 육식은 때로는 금이지만 어떨때는 약이 되기도 한다. 얼굴 찌뿌린 동자승들을 위해 침 삼키며 많은 스님들이 곤욕했겠다. 냄새는 인간이 참기 참 힘든 감각이다.

 

▶ 한 선배의 블로그를 찾았다. 선배라고 칭하지면 대승적 관점이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는 그를 알고, 나는 그저 그의 블로그를 왔다갔다 하며 훔쳐볼 다름이다. 고혈을 빠는 탐관오리의 관점이었다. 혹시나 뭔가 있을까봐 매일 그의 블로그를 들린다. 그는 한탄을 했었다. 20여년전과 다를 봐 없는 인적구성. 수습을 찾아보기 힘든 편집기자의 풍토, 그 풍토하에서 그는 늙어가는 자신을 봤으리라. 그래서 씁쓸했으리라. 누군가 피의 고동을 이어갈 사람을 찾아보고 싶었으리라. 세월은 과거의 영광을 잊게하려 한다. 뉴미디어의 시대다. 종이신문의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많이 이들이 편집에 회의감을 느꼈으리라. 이제부터는 그저 몇 안남은 과거의 영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전보다 더 많은 판을 짜며 인공호흡기에 겨우 살아남은 생명을 위로하는 시대가 됐다.

 

▶ 부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종이신문의 종말을 염려하며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시퍼란 새내기인 나는 논하고 싶다. 우리의 쓸모는 2.0의 시대를 넘어 4.0의 시대를 가고 있다고 말이다. 뉴스를 만지는 것은 누구나나 부러워할 능력이다. 무엇보다 그 쓰임이 세상 여러 군데에 있다. 종이신문으로 한정지으면 많이 우울해 지겠지만 뉴스를 만지는 능력은 뉴스를 쓰는 능력보다 우위다. 뉴스를 쓸줄 알아야 뉴스를 만질 줄 안다. 나를 모르는 그 선배는 보길도의 어느 마을을 떠올렸다. 마을 누군가가 거간꾼에 매여 가면 그 집 고추나 작물들이 바짝 마르고 그런단다. 하나하나 종말의 문턱을 넘어 역사 속으로 잊혀지지 않는지 염려했었다.

 

▶ 편집기자 4.0의 시대이다. 3.0의 시대는 끝났다. 4.0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자라는 이름을 벗고 에디터라는 이름을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일년전이다. 남들이 곱게 가져다준 사냥감을 요리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사냥꾼들에게 사냥을 조언해줄 정도의 공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기에 행간을 읽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남들은 우리네 인생들이 끝났다고 말한다. 종이신문이 종말을 하니 그 인생이 예견된다고 말이다. '박근혜가 바뀌네'라는 타이틀을 누가 만들었던가. 우리네 인생은 종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이밖에서 할일이 무궁이다. 나는 당찬 신예다. 상도 하나 받았으니 데뷔는 한 셈이다. 그러나 머물지 않으려 한다. 선배들을 닮으려는게 아니라 새로운 이름자를 새기고 싶은 마음이다. 동자승은 불행히 절간에 들어와 출가를 하고 혹자는 세상을 향해 다시 출가를 한다. 그런 모습이다. 출가에서 출가로 가는 여정이다. 현재를 사는 나와 같은 편집자들은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을 한다. 종이를 넘어 뉴미디어로, 뉴스의 편집자를 넘어 편집자적인 뉴스를 만드는 사람 말이다.

 

 

'Co-Culter Club > 쓰다, 길게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팔매] 연탄  (0) 2013.09.28
[我非我趣] 절대三락  (0) 2013.09.19
[돌팔매] 채동욱 '父情과 不訂'  (0) 2013.09.13
[我非我趣] 가위와 나  (0) 2013.09.11
[我非我趣] 개성만리  (0) 201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