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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我非我趣] 절대三락

▶ 기차길옆 오막살이는 아니지만 이모네 옛날집은 철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환경권이란 권리를 존중하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형방에 누워서 잠을 잘라 치면 덜커덩덜커덩 기차가는 소리가 구들짝 넘어 울려퍼지곤 했다. 지금 사는 곳은 기찻길과는 아주 멀리 있지만 오밤에 귀를 기울이면 저 멀리 기차걸음소리가 들린다. 덜커덩덜커덩,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 시절, 기차는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그 어린 국딩이 기차의 종류를 술술 외울 만큼 기차가 몰두했다. 나에게 기차는 그저 좋은 것이었다. 외가집이나 가야 타는 기차, 입석을 끊고 무궁화를 타도 그저 좋았다. 기차는 내 어린 시절에 참 좋은 유희였다.

 

▶ 병적으로 좋아하던게 지도였다. 지도도 그저 좋았다. 지도와 기차는 절대 좋은 것이고 본인도 좋은 이유를 모를 만큼 빠져들게 만들던 존재였다. 하루종일 지도 한장을 보고 놀았다. 놀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신체적 활동이 수발되겠지만, 아무런 움직임없이 그저 놀았다. 지도만 보고 놀았다. 지도가 지겨워지면 지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여기까지 신도시개발지구, 여기는 항만특별지구 등 지도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택지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개발구역을 만드는가 하면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서 지명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고대지도를 만들었다. 지도에 빠지게 된 것은 이름 때문이었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 기차와 지도가 안방 혹은 도외지에서의 놀이였다면 재개발은 흙더미 위에서 하는 창조작업이었다. 흙만 있으면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지형과 지물을 파악한 뒤 길과 수로를 만들고 건물을 올리고 구획을 나누고, 구획에 맞는 스토리를 지었다. 흙위의 스토리텔링이다. 지난 시절을 곰곰히 떠올릴 때면 혹 내가 학과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나누기 좋아하고 구획하기 좋아하고 지구를 지정하기 좋아하고 그에 알맞는 청사진을 만들고, 결과로 나만의 신제국을 만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아이' 같은 취미다. 다섯살부터 열살까지 4대강놀이 비슷한 것을 하고 맨날 놀았다니.

 

▶ 사람마다 무조건 좋은 것이 있다. 나의 유년엔 기차와 지도, 재개발이었고, 지금은 첫째가 일이고 나머지는 소소한 취미다. 어떤 이들은 무조건 좋은 것이 어긋나서 이상야릇한 상상을 펼치다 쇠고랑을 차기도 한다.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겠지만 병적인 집착의 결과인 족쇄는 지양해야 한다. 사실 사람마다 하나씩 페티쉬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페티쉬라고 하면 변태적 습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경우고,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를 말하는 것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본인의 경우에는 가는 발목과 작은 발을 보면 이성적 매력을 느낀다. 이것이 잘못된 사람들이 냄새에 집착을 한다.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입던 속옷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착은 나쁜 것이다. 하지만 애착은 좋은 것이다. 내가 기차와 지도, 재개발을 좋아하고, 애착을 갖고, 또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같은 감정을 갖는 것처럼 애착은 권장할 만하다. 다만 이상한 집착이 되면 옳지 않다. 한편 애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생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모 시인이 그랬다. 연탄재를 차지 말라고, 당신은 언젠가 그렇게 뜨거워본 적이 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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