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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B급문화의 이데올로기 '병맛이 좋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말줄여쓰기를 참 즐긴다. 젊은 축에 드는 필자도 한눈팔고 있으면 못알아듣는 말도 있을 정도다. 흔히 '언론플레이'를 '언플'이라고 하기도 하고, '완전 소중한 것'을 '완소'라고 부른다. 나이 어린 세대가 줄여쓰는 것은 이외에도 참 많다. 헌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말줄임의 현상이 과거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열개 내외의 숫자로 감정과 메세지를 표현했던 '무선호출기'나 80bite안에 모든 걸 담아야하는 '문자메세지'는 이른 과거의 수단들이었다. 이제는 '무선호출기'를 쓰는 사람을 찾기가 모래더미 속에서 바늘찾기와 같고, 문자메세지는 무제한의 'MMS'나 '카카오톡'으로 대체됐다. 분명 무선통신기기에서의 '활자 수의 한계'는 잊혀졌지만, 말줄이기와 통신은어로 압축되는 표현수단들은 지금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게중에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의미하는 '병맛'은 가장 널리 쓰이는 말 중에 하나다. '병신 같은 맛'을 줄인 병맛은 어찌보면 국적불문의 언어다. '병이 든 신체'를 뜻하는 병신 중의 '病'자가 우리말 '맛'을 만나, '병맛'이 됐다. 의미적으로 보면 '질병의 맛'정도가 되겠다. 좀더 위트있게 해석해보면, '질병을 맛보는 것처럼 신랄하다'정도로 전달되겠다. '병맛'의 반대의미는 '고상한맛'이나 '고풍'정도가 될텐데, 문화컨텐츠적인 예를 찾아보면, '요한세바스찬바흐의 칸타타'나 '똘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정도를 꼽겠다. 현대로 넘어와보면 '조지루카스의 스타워즈'는 참 '고풍'스럽다. 허나 초창기에 만들어진 '스타트랙'은 참 '병맛'스럽다. 어찌보면 '병맛'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통용되던 미적가치를 반하는 어떤 것'으로도 읽혀지겠는데, 흔히들 말하는 'B급문화'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최근에 접한 미디어 중에서 가장 '병맛'스러운 것을 꼽아보라면 영국드라마 '닥터 후'를 택하겠다. 영국열도 내에서 아주 유별나게 취급될 것 같은 주인공 '독토(닥터)'와 시즌마다 간간이 물갈이되는 여자조수, 그외의 여러 조력자들, '닥터 후'는 아주 그럴싸한 'B급 영상물'이다. '타임로드'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달렉'은 쓰레기통을 닮았다. 그 쓰레기스러움의 극치는 달렉의 팔인데, 뚫어뻥처럼 생겼다. 마치 아주 잘 작동되는 '움직이는 쓰레기통'같은 느낌이다. '사이버맨'은 아주 고전적인 로봇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인간의 뇌를 잘라서 기계와 접촉해 만들어낸 사이보그인 '사이버맨'은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만 매번 허무하게 멸종된다. 이외에 많은 동물형 외계인부터 '병맛'스러운 스토리까지 '닥터 후'는 가히 'B급 상상력의 결정판'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영상물이 꽤나 인기가 있다. 필자 역시 열열히 사모하는 드라마다. 

  헌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도 아이러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느꼈듯, 우리는 현란하면서도 사실적인 컴퓨터그래픽에 완전히 매료돼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비장한 한 영웅의 일대기에 감동한다. 모두 완벽한 예술작이다. 자극에 길들여진 동물이 더욱 쎈 자극을 찾듯, 명작에 길들여진 인간은 더욱 쎈 예술혼을 느끼고 싶어한다. 헌데 위에서 언급한 '닥터 후'와 같은 B급물의 인기는 명작과 비견될만하다. 엄밀한 B급인 '크리스카터의 엑스파일'은 명작 이상이다. 왜 우리는 명작을 찾아 목마른 감성을 채우려 해야함이 맞을텐데 왜 B급에 열광하고, B급을 못찾아 봐서 안달인 걸까

  B급 문화를 다른 말로 풀어보면 '비주류 문화' '비주류의 산출물과 향유물' 정도로 이해되겠다. B급 문화는 분명 문화적 비주류의 소유다. 주류사회가 전하는 메세지, 공유하던 생각들을 거부하는 비주류 지향의 문화가 B급 문화다. '체제방관적인 저항'으로 보여지기도 하겠다. 또 주류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하소연이요, 가장 순응적인 레지스탕스로도 비춰지겠다. 이런 B급 지향성은 사회에서 B급 문화의 체제를 형성한다. B급 문화의 우수함은 다양성에 있다.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것 같은 비빔밥과 같은 느낌이다. 주류에서 손가락질 받는 것들이 'B급 세계'에 들어오면 우대받고 때로는 추앙도 받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는 않지만, 보다 뚜렷한 취향을 지닌 매니아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B급 세계다. 덧붙여 B급 세계는 계급적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누구나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실증나면 내버릴 수 있다. 고상함을 지키려고 억지로 감흥하거나 졸린 눈을 비비지 않아도 된다. 매일 매순간 흥미로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천박하게 '킥킥킥' 웃어도 누구 하나 머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B급 세계는 이렇게 드나듬이 자유로운 누구에게나 열린 세계다. 누구나 환영받을 수 있는 문화적 도량이다.

  우리는 왜 B급 문화에 열광할까. 그 이유는 B급 문화의 성향이 그렇듯 그 향유층이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주류의 세계, 주류의 문화는 '누군가'를 위한 세상이다. B급 문화는 '아무나'를 위한 세상이다. 1%에 포함되지 못한 99%의 세계다. 주류 세계와 마주대하면서 느끼는 피로도를 우리는 B급 문화로 위로 받는다. '어설프다, 괴상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욕에 욕을 헤대면서도 손에서 뗄 수 없다. 오히려 손가락을 더욱 움켜쥐게 만든다. 행여 자신이 B급 문화에 열광한다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가장 위대한 것은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세익스피어는 몇억의 독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세익스피어가 '애초의 몇몇'들에게 읽혀지지 않았다면, 또 그것이 타전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문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가장 보편적인 독자들에 의해서 가장 위대한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오늘도 많은 B급 컨텐츠들이 주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보들레르가 그랬듯 영원한 B급도 없고, 또 누군가처럼 영원한 A급도 없다. 풀벌레 소리가 깽깽이처럼 들리는 밤이다. 쉬이 잠자리에 들기 힘든 밤이다. 오늘 같은 밤에는 B급 문화에 빠져보자. 어떤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B급 컨텐츠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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