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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지식의 종말 EP1, 스마트폰과 언스마트피플


지식의 종말 시리즈 순서


EP1. 스마트폰과 언스마트피플
EP2. 정보시대의 블랙홀, 포털 빅브라더
EP3. 집단지식의 아이러니, 정보의 양극화
EP4. 후대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 난독증
EP5. 21세기의 원시인들이여 일어나라


  지식이 발생하고 확장하는데에는 여러 기지들이 작용한다. 그 기지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발생한다. 인류사 최초의 기지는 불의 발견이다.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맹수들의 아가리 밑에서도 자손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에는 '불을 피우는 법'을 알아낸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점화의 기지'는 인간의 거주지를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됐다. 또 온도의 제한을 벗어나게 함으로써 인류가 어디서든지 정착할 수 있게 하는 시약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점화의 기지' 이후 나온 것이 '지필의 기지'다. 인간이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동굴에 그리던 각종 그림들은 문자가 돼 문명 발전의 단초가 됐다. 문자의 발명으로 선대가 가졌던 지식이 후대로 용이하게 넘어올 수 있었다. 허나 단순 문자만으로는 문명을 발생시키는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돌이나 나무조각에 그려넣던 문자들은 곧 '닥종이와 양피지'의 발명에 힘입어 인류를 급속하게 변화시켰다. 문자와 종이는 인류사 수천년을 획기적으로 바꿔놨다.

  선사 이후 정속주행을 하던 인류사는 현대 이후 급속팽창하기 시작한다. 그 이면에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통화의 기지'만큼 인류를 가슴떨리게 하는 변화는 없다고 본다. 1876년 최초의 유선전화가 발명된 이래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시간은 전화를 넘어서는 '스마트한 전화'의 시대로 전환됐다. 전화의 발명은 사람과 사람의 공간적인 장벽을 허물게 했다. 거리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서 시간적인 장벽마져 무너져 이제는 전세계인이 동시에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됐다.

◆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일상

  30살의 직장인 L모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오늘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차에 타서는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꼽고 '네비게이션앱'을 켠다. 저장된 목적지를 누르자 막힘이 없는 길을 안내해 쉬이 직장에 올 수 있었다. 오전에 중요한 바이어를 접대하는 자리에 놓을 커피 역시도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 점심시간에는 소셜커머스로 구입한 쿠폰으로 정가보다 40%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퇴근길 주유등이 켜진 차를 몰고는 인근에서 가장 싼 주유소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자 저녁시간에 맞춰 주문한 식재료들이 배달됐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결제한 후 스마트폰 인터넷으로 찾은 레시피로 요리를 해먹는다. 늦은 저녁 그는 '위치기반 만남앱'으로 집 인근에 사는 두살 어린 여자와 만나 간단한 술과 안주를 먹고 집에 돌아온다. 침대에 누워 자기 전 각종 정보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지구촌 소식과 각종 뉴스를 접한 후 내일 해야할 일을 다시금 확인하고 잠이 든다.

  이상은 이제는 현실이 돼 버린 스마트한 일상이다. '규모의 경제'인 통신산업이 일정량의 기반을 갖추면서, 또 스마트폰이 일상에서의 '필수재'가 되면서 무선전화를 사용하는 가장 큰 문제였던 '요금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누구나 통신사의 각종 정액상품을 활용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스마트하게 바꿀 수 있게 됐다. 와이파이로 일컬어지는 근거리 데이타통신망이 구축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드는 비용은 전기료 뿐인 세상이 왔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에 구겨넣어진 세상이 온 것이다. '앱'의 발명은 그 과정마져 간편하게 바꿔 버렸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 키워드를 넣는 과거의 디지털문화는 자신에게 맞게 만들어진 '각종 앱의 다운로드'형식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찾을까'하는 고민도 필요없이 '어떤 것을 다운받을까'만 선택하면 된다. 간단한 뉴스보기부터 야식배달까지 '앱'은 인간의 가장 마지막 귀찮음마져 없애버렸다.

◆ 스마트시대의 아이러니! 언스마트피플

  스마트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스마트피플을 양산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일상의 많은 고민들을 해결해줬다. 심지어는 복잡한 인간관계 마져도 실시간 댓글을 통해 조언을 받기도 한다. 인류가 태동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해왔고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그 시행착오에 드는 각종 기회비용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지식은 오히려 도태되고 있다. 다수가 소수가 만들어낸 각종 도구에 의존하면서 가장 지식의 기초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됐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데이트를 할까' '유명한 맛집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포털에 올려진 많은 포스팅으로 대체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누군가가 만들어낸 규칙대로 인생을 살게 된다. 한쪽 편에서는 타인을 즐겁게 해줄 각종 정보를 생산해내지만, 다른 편에서는 그것을 그냥 받아만 먹고 살고 있다. 

  신문을 뒤적거리며 꼼꼼하게 관심있는 뉴스를 읽는 모습,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쌓아놓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찾는 모습, 지도를 펴고 자기가 가야할 길을 살피는 모습, 이 모든 장면들이 스마트폰 속에 녹아들었다. 만약 이 추세대로 20여년이 지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어느날 갑자기 끔찍한 태양폭풍으로 전세계 모든 전자제품이 멈추고 고장나 버렸다. 전기가 끊어져 세상이 온통 암흑이다. 거리에는 갈 길을 잃은 자동차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을 찾아만 가던 스마트피플들이 길치가 돼 자주 다니던 길조차도 기억하지 않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신문발간을 멈춘지도 한참됐다. 매뉴얼로 움직이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던 각종 정부의 서비스들은 갑작스런 비문명적인 전환에 당황해하고는 부랴부랴 임시직원을 뽑아봤지만, 헛수고다. 컴퓨터 없이 일처리를 해낼만한 사람들이 몇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남은 종이책도서관은 정부관계자나 각계각층의 문의와 방문으로 연일 바쁘다. 주민들은 동사무소에 모여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려 하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단문의 SNS와 문자메시지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어떠한 논리적인 추론도 대책도 내놓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인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약간의 과장이 섞인 상상이지만, 충분히 가능할만하다. 우리는 점점 아이들에게 제대로 읽고 쓰고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교실에 타블릿PC를 넣어 분필가루가 없는 교육환경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두뇌발달의 가장 기초적인 손동작인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소리다. 스마트를 가장한 우민화다. 그 증거는 당장 우리 교육현실로 가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시험지 체험하는 것을 아주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주관식으로 정답을 쓰는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거의 그림이 가까운 지금 학생들의 글씨는 효율을 강조해온 우리 부모들의 교육방식의 폐해다. 영어단어 한두개를 더 외울줄 아는 것이 고운 글씨를 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악필로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악필을 가진 아이들이 머리가 좋다고 했었다. 지금은 거의 다 악필이다. 또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는 인터넷으로 배껴서 낸다. 곤충채집과도 같은 방학숙제는 부모가 손수 돈주고 사준다. 인터넷이 상용화된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의 일상이 이러한데, 10년 20년 후는 어떻겠는가. 더욱 심각하면 심각했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 느리지만 알찬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

  그렇다고 당장부터 원시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소리는 아니다.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20여년의 시간은 어떻게 보면 인류사의 발전과정과 참 많이 닮았다. 위험을 느끼면 울기만 하던 피덩어리가 걸음마를 하고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때로는 다치고 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인류가 최초로 두발로 걷고 대지로 터전을 옮기는 과정과 비슷하다. 또 글자라는 것을 깨우치고 종이에 그것을 쓰고 또 타인들이 남긴 지식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문명 초기의 인류의 모습이다. 가정을 벗어나 학교에 들어가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은 국가의 발전과정과도 상통한다.

  인간은 지금껏 선조가 해오던 과정을 선대의 시간과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짧게 해왔다. 지금은 오히려 글자를 쓰고 깨우치는 과정,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인간이 점점 편의성을 찾게 되면서 지성의 근간이 되는 각종 과정들이 사라져갔다. 앞으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나마 그 흔적이 남아있는 현재의 30~40대의 세대들은 그 과정을 후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간편하게 찾아보는 각종 지식은 휘발성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읽고 찾아보는 수고를 거치지 않는 지식은 어느 두뇌의 메모리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글씨를 쓰는 과정, 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자신의 사고를 만드는 과정이다. 지금처럼 단문SNS에 익숙해져 버리면 후대에는 장문의 논문을 써내는 박사들이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점점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인류의 발전과정은 대대적인 역전환을 맞게 된다.

  그래서 두바퀴를 곱게 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당장에 인류생활사의 각종 편의들을 멈출게 아니라, 그 속도는 그대로 유지해돼, 지금껏 인류를 발전시켜오던 그 모든 아름다운 과정들 역시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자는 소리다. 탐구하지 않는 인류는 도태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두뇌는 효용가치를 잃게 된다. 그래서 점점 지식의 생산자들이 줄어들게 되면 그와 비례하게 인류의 멸망 또한 가속화된다. 멈추고 내려놓고 때때로 수고로움을 값지게 여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느 날 한순간 모든 전자기기가 멈춰버린 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아는 봐 없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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