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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그냥' 꽃무늬



▶ 거리마다 꽃무늬가 유행이다. 꽃구경 힘든 도심에서도 한창 꽃다운 캠퍼스 안에서도 꽃무늬는 거의 물결이다. 甲女乙女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꽃무늬로 온 몸을 치장하고 꽃다운 풍모를 뽐낸다. 마치 "어서 나를 꺾어가세요"라며 단체시위를 하는 듯 하다.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돌는 것이고, 플라워 프린팅 역시 패션의 한 종류로 치부하지만, 필자는 꽃무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만하고 정신이 없고, 무엇보다 엄마옷 같다. 세련된 꽃무늬 옷은 세련된 엄마옷 같다. 지금이야 너도 나도 걸치니 좋다고 함께 걸치지만, 몇년만 지나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이라도 남았으면 창피해서 어서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 문제의 꽃무늬 옷은 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왜 유행을 타는 것일까. 정말이지 궁금한 꽃무늬다.


▶ 문제는 어이없게도 매스미디어의 '카더라'성 패션기사다. 먼저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들이 선수를 친다. '짱구'를 마구 굴려서 올 봄에, 혹 올 여름에 이런 옷이 유행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 뒤 거창하게 패션쇼를 연다.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몇몇 패션잡지에서는 이런 저런 상황을 헤아려보고 디자니어들에게 조언을 구한 뒤 기사를 쓴다. 발빠른 업자들은 정보를 재빠르게 습득해 대량생산의 묘기를 부린다. 그렇게 온 상점마다 꽃무늬가 걸린다. 굶주린 트렌드세터들이 먼저 냉큼 집어든다. 과감한 패션이 눈길을 끌면서 모든 여인들은 블로그로 몰려들고, 한 장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옷가게 사장님들이 온갖 교언영색으로 순진한 여인들의 귀를 잡아챈다. 결국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유행으로 모든 여인들에게 꽃무늬를 입히게 된다. 일종의 '넛지'에 당한 것이다.


▶ 다른 측면은 경제상황과 연관지을 수 있다. 불황이라고 너도 나도 힘든 상황에서 여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그 미묘한 심리의 저편에는 '파는 자'와 '사는 자'가 존재한다. 유물론적인 생각이다. 물론 몸을 팔지는 않지만(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결론은 비슷하다), 비슷한 조건을 가진 여인집단이라면 여러 치장물로 자신을 포장하는 쪽이 유리하게 된다. 한 쪽이 치고 나가면 다른 한 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떤 이가 화려한 꽃무늬 옷으로 뭇 남성들의 눈길을 끌었다면, 그 눈길을 빼앗겼다는 분노에 꽃무늬를 집어드는 것이다. 결국 너도 나도 꽃무늬를 걸치게 되고 세상은 꽃세상이 된다. 불황에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문제적 인간 마광수 교수는 '가자, 장미의 여관으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 난 말 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 가자, 장미여관으로!


▶ 대학 신입생 시절 최고 유행은 파스텔톤 남방에 면바지였다. 서로가 풋풋하던 시절, 경쟁적으로 풋풋함을 경합이라도 하는 듯 입어댔다. 지금도 그런 류의 복장을 좋아하기는 한다. 생각해보면 그 또한 '새내기 대학생 패션'의 생산자에 의한 농락이었을게다. 만약 어떤 이가 그런 수수한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고 가정하자. 그럼 꽃무늬들이 속으로 혹은 서로 서로 '어떻게 저렇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라며 수근대겠다. 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이틴 스타'가 떴다고 큭큭대겠다. 검은 터틀렉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뭔가 덜 떨어진 사람처럼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의 트렌드리더들은 '저런 오타쿠 같은 패션이 다 있나'하며 수근댔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람은 스티브 잡스였고, 그의 차림은 전 세계적 유행이 됐었다. 유행이라는 것이 참 알쏭달쏭한 것은 이런 이유다.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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