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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시계태엽오렌지와 베토벤 No. 9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오렌지'는 앤디워홀이 한창 활동하던, 팝아트의 절정과 연관이 있다. 나는 팝아트의 단편적인 사조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팝아트는 결국 어찌 되었건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관념이 아트에 투영된 관념으로 변질됐다. 팝아트는 그런 식으로 폄훼해서는 안되는 생각이다. 우선 팝 아트의 팝이라는 단어를 보자. 팝은 대중적인 어떤 것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다. 워홀이 그의 작품에 실크스크린을 적용한 것인 그것과 상통한다. 팝아트의 본질은 공장주의에 있고, 우리 돈으로 따지면 만원짜리 그림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지금도 많은 위홀의 작품들이 십여만원 선에서 거래되는데, 그것은 위홀이 지향하던 바와 같다. 누구나 집에 걸어 놓고 싶은 그림,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방문인이 의아할 그런 그림, 그것이 앤디 위홀이 추구하던 실크스크린이었다, 현세에는 많이 그 의미가 변했다. 해석하는 주류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변했다 생각을 한다.


  스탠티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오렌지'는 갖 컬러영상이 상용화되던 시점의 분위기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대중에게 컬러를 상용화할 수 있게 되면서 예술은 많은 발전을 했다, 색감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폴로의 달착륙이 그저 흑백이라 생각하지만, 컬러도 있다. 컬러도 가능한 시대였는데 일부러 흑백을 쓴 측면도 있다. 그래서 여지껏 음모론이 판치고 인류가 달에 갔네 안갔네 논쟁을 하는 것이다. 치밀한 사람들은 각도를 계산해서 그림자가 다 제각각 이라며 달착륙 스토리는 연출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인류는 달에 갔지만, 생생한 장면은 일부만 알고 나머지는 연출해서 보여줬다고 말한다. 마틴루터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소"라고 외치던 시대였다. 변혁하던 시대였다. 낡은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났다. 예술도 고상함을 벗으려 노력하던 시대였다. 이른바 뉴웨이브 문화가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는데, 강산이 수번이나 바뀐 지금은 다시 옛날 방식이 많이 통용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혁명적인 곡이다. 교향곡 최초로 합창의 기법을 사용했고, 지금까지도 합창과 교향이 어울린 곡 중에서 대중에게 각인된 곡은 9번이 유일하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그리는 교향곡 9번은 죽어가던 베토벤의 마지막 일성이었고, 혁신가적 반항아의 일면을 돋보이게 하는 곡이었다. '시계태엽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이 쓰인 이유는 알 만한 사람은 미루어 짐작하리라 본다. 교향곡 9번은 당시대의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그 혁명적인 발상을 꿈꾸던 청년은 결국 하나의 쓰레기로 승화돼 버렸다. 마지막 장면에 사진기자들 앞에서 엄지를 치켜든 그의 모습은, 하나의 변혁이 세상의 원칙 속에서 깍이여 맨들맨들 해진, 아무것도 아는 것이 되어버린 상황을 상징한다. 상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대중의 심리를 파고느는 최고의 무기다. 내가 글에서 상징을 많이 쓰려 하는 것은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다. 


  영화는 영화대로 보고 즐기시라. 전체적인 스토리의 감은 그렇다. 세상 최고의 쓰레기가 결국 정권의 앞잡이가 되는 그런 양상이다. 당신네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여는 것은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을 '넛지'라고 부른다. 누구는 최악이라 누구는 최선이라 의견이 분분한 인물이 결국 선거를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선거공학'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절대 의도된 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앤디위홀의 경우와 비슷하다. 위홀은 예술이 정말 싸구려 장식품으로 치부되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스팸과 런천미트와 비슷한 개념이다. 워홀은 자기 작품이 런천미트가 되길 원했다 생각한다. 사회는 그를 시대적인 예술가로 만들었고, 결국 그의 업적은 한우 특뿔이 돼 버렸다. 예술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예술은 대중과 멀어진다. 예술은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한다. 워홀이 수프깡통을 그린 것은 그런 개념이다. 예술적인 대량생산을 꿈꿨다 생각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오렌지'도 마찬가지의 개념이다. 예술의 최적화된 상업성, 예술을 슈퍼마켓에서 사는 사회, 그런 개념을 워홀이 죽기 전까지 꿈꿔왔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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