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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오래된 사진

  어머니의 성급한 전화를 받고 깬 것은 늦은 아침이었다. 식당일을 하시는 어머니는 손님이 지갑을 놓고 갔는데, 찾으러 오지 않아서 대신 찾아주라는 이유였다. 지갑을 잃은 남자는 1986년 생이었는데, 어머니는 객지에 보낸 동생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전화번호도 없고 명함도 없고 학생인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떻게 찾아줄지 모른드는게 어머니의 항변이었다. 모친말 잘 듣는 나는 늦은 아침을 하고 서둘러 어머니의 일터로 갔고 지갑을 건내 받았다. 지갑을 건내받은 내가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은 필시 내가 좀 못됐기 때문일게다.

  '신분확인'을 한다는 대의로 지갑의 여기저기를 뒤졌다. 일단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 정당성이 있기에 내 행동은 바람직해보였다. 일단 돈이 얼마 있는지 확인을 했다. 정확히 2만 8천원 정도 들어 있었다. 돈 10만원씩 들어있었다면 고민을 많이 했겠다. "찾아줬다고 거짓말을 하고 내가 먹으리라" 그럴 수 없는게 두둑한 지갑도 아니고 준메이커 지갑이있는데, 대학생이면 누구나 그거 하나쯤은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지갑에서 찾아낸 신분은 기독교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지갑에는 체크카드 몇개와 보안카드가 들어 있었다. 비밀번호를 모르면 아무짜기 쓸모 없는 종류다.

  '주인을 꼭 찾아주리라(?)'하는 마음으로 지갑 속 주인의 학교에 전화를 했다. 과사는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통화 중이었고, 대표전화번호를 걸으니 '지금은 점심시간이나 좀 이따 전화하라'그랬다. 정확히 오후 1시 14분, 아무리 봐도 점심시간은 지났다. 행여 점심시간이라도 누군가는 전화를 받았겠다. 대표번호질 않는가.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20여분의 긴 통화연결음의 감상 후에 드디어 학교관계자와 통화에 성공했다. 학교관계자는 조교들이 모두 워크샵을 가서 과사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무례한 이유다. 평일이었다. 간단히 학생 이름과 학번, 내 전화번호를 남기고 끊는다. 무례했다는 생각에 잠시 기분이 나빴다.

  두 시간 후 온 전화의 학생은 아주 반가운 목소리였다. '회사 앞에서 만나자'하는 약속을 하고 기다렸다. 저녁이 다 돼서야 온 그 학생은 건내 받은 지갑 대신 나에게 봉투 하나를 드리 밀었다. '나라도 그 정도는 하겠다'하는 생각에 쑥쓰러움을 물리치고 받았다. 봉투 안에는 만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학생에게 그 정도는 큰 돈 이렸다. 심지어 나에게도 조금은 큰 돈이다. 학생은 "정말 잊어버리면 안되는게 들어있는데, 찾아줘서 고맙다"하는 말을 남기도 떠났다. 곰곰히 생각했다. 보안카드나 체크카드는 신고하면 끝이다. 새로 발급받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 지갑 속에 들어 있었던 빛바랜 흑백사진이 떠올랐다. 설마 그 사진일까.

 흑백사진은 어느 젊은 여자의 반명함사진이었다. 흑백으로 찍혔고 빛도 바랜게, 필시 20~30년은 족히 지난 골동품이렸다. 순간 그 젊은 여자가 학생의 어머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빛바랜 흑백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겠는가. 학생의 나이대와 사진의 오래됨, 그리고 학생의 태도를 유추해보건데, '돌아가신 학생의 어머니이겠다'하는 추축이 거의 맞아 보였다. 학생은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100% 선의가 아님에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는 지갑 속에 소중한 추억을 숨기고 다닌다. 즐거울 때, 행여 힘들거나 삶이 외롭고 쓸쓸할 때, 그 사진을 보며 위안을 얻었으리라. 그만큼 소중하고 자주 꺼내보고 싶으니까 지갑 속에 넣고 다녔으리라. 

  세상 만물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누구나 추억을 수개씩 등에 짊어지고 산다. 그게 쓰건 달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잊어 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으면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소중하게 여기리라. '하루를 마치고 문득 아주 좋을 일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화로 찍어낸 듯한 오늘의 나의 일상, 현재에는 아주 비루하게 여겨진다. 허나 수년 수십년이 지나고 문득 떠오를지 모른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또 어떤 자취들을 남기고 지나가는가. 지루한 비가 이제는 좀 잠잠해졌다. 잠잠해진 하늘에 잠자리 하나쯤 날아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리라. 시간을 움켜쥐고 싶은 밤이다. 그렇게 소중한 밤이다. 모주를 한잔 먹었다. 알싸하게 어지러지는 풍경처럼, 마음도 어지러지는 날이다.

<from NapSap,Parakshert Doyof, http://coc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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