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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메] 약동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곳이 있다. 처마밑일수도 있고, 도심의 에이컨 실외기 밑일수도 있다. 음지다. 볕이 들지 않는 음지다. 한참의 무관심이 응시하는 그곳에 이끼들이 한웅큼 자라있다. 사의 공간인 벽을 뚫고 생의 공간인 허공을 향해 내뻗는 의지의 가지자람들이다. 몇푼도 안되는 양분과 습기로도 그곳은 충분히 생태를 이루고 있었다. 놀라움이다. 어거지로 인공의 손길을 거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기르고 녹색으로 영글게 한 것이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곳이 있다. 뚝뚝 떨어지다가 요란스럽게 내리 붓는다. 하늘에서 일천개의 수도꼭지를 일제히 열어 제낀 것 같다. 먹구름이 까맣고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까맣다. 물길이 다녀간 도시에 갈라지고 파여진 아스팔트 생채기만 남는다. 놀라움은 그때부터다. 씨앗을 물어다주는 것 어느 하나 없는 황량한 인조의 땅에 새파랗게 생명이 자라난다. 건물벽이든 골목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라는 것은 어디를 가리지 않는다. 한톨의 땅과 한줌의 햇빛만 있으면 어디든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른다.

  오래 다녀가지 않는 길이 있다. 목적이 없어 다다르지 않는 그곳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고 있다. 해가 뉘였뉘였 지나가는 오후 한철에도 생명의 확장에는 여념이 없다. 약동이다. 가느다란 리듬이 멜로디가 가청음역대를 넘어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자라고 있다. 한철이 지나고 또 한철이 지나고 차가운 세상이 찾아오면 시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약동은 멈추지 않는다. 땅속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 또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봄을 맞이하는 두근거림에 시달리고 있다.

  차에 가만히 앉아서 흘러간 노래를 들었다. 광화문, 혜화동, 나에게는 너무나 먼 동네다. 노래는 그대로다. 가수는 나이가 지긋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하다. 세상은 변한다. 수식과 파형만이 그대로 남는다. 문자도 변한다. 어제의 문자는 향수다. 그리워지게 한다. 그래서 문자가 위대하다.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는 문자는 위대하다. 변한다는 말이 세삼 떠오르는 날이다. 생명이 끊질기게 구멍과 구멍에서 세어나오는 광경을 보았다. 나도 변했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조차 변했다. 우리는 모두 변한다. 나고 돋고 우렁차고 소멸한다. 갑자기 하늘을 본다. 하늘이 붉그녁하게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붉게 붉게 변해간다.

<from NapSap,Parakshert Doyof, http://coc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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