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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한국경제 후벼보기 4, 누가 노동을 아름답다 했는가

1, 창업 대한민국! 망해가는 가정경제의 악셀레타를 격하게 밟아라
2, 독과점 대한민국의 현실, DJ 작사 MB 작곡!
3, 변화하는 자산보유형태, 미래의 대끼리는 어디에!
4, 누가 노동을 아름답다 했는가

  노동은 신성하다. 기독교에서 노동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라고 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국 불교계의 거목인 성철스님은 늙어 타계하실 때까지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일부 종교인들은 무노동이 마치 수도하는 자의 특권인 것처럼 한다. 심지어 세속화됐다고 욕에 욕을 먹는 모 목사도 연단에 올라가면 목청이 터져라 외친다. 그에게는 그게 일인 것이다. 세속에 있건 세속이 아닌 곳에 있건 노동은 누구에게나 신성한 것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무언가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다. 원시시대에는 산이나 들에서 동물을 잡거나 과일을 따서 연명을 했다. 시장이 생기고 물물교환에서 화폐가 생기면서 인간의 업이 분화됐다. 모두에게 마다 한가지 특정한 일들이 주어졌다.

  노동 자체는 20세기를 넘어오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자본이 성장하면서 노동은 자본의 하수인이 되버렸다. 공장은 쉴세없이 돌아가고 노동자는 땀을 흘리고 심지어 피도 봤지만, 보상은 적었다. 반면 자본가는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부를 소유했다. 이런 반감이 싹트면서 세계는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노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국가의 모든 국민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시즘이다. 국민은 하나의 부품이 되서 국가를 기계처럼 돌린다. 한세기 동안 인류를 위협했던 냉전은 종식됐다.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혁명가의 구호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유산은 아직도 남아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이제 한국이야기를 해보자. 개발경제 시대의 노동은 한마디로 착취다. 위정자의 '잘살아보세' 이데올로기는 자본가의 횡포를 묵인해줬다. 심지어 고맙게도 공권력을 투입해서 도와주기까지 했다. 노동현장에 공권력, 즉 경찰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의 안위를 지키라는 경찰이 자본가의 재산을 지켜준다. 심지어 자본가는 용역까지 고용해서 공장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쓴다. 아이러니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았으며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았고 일터를 지키고 앉아서 권리를 주장한다. 왜 그들에게 경찰의 곤봉과 방패가 선물로 주어져야 할까. 노동운동을 생각하는 자본가와 정부의 입장을 몇가지로 줄여보자.

1. 잦은 파업은 국가 경제의 악이다.
2. 직장을 점거한 노동자에게는 경찰의 곤봉이 약이다.
3. 노동자가 자기가 낸 세금으로 고용한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분명 자본가와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운동은 삐뚫어진게 분명하다. 헌데 비단 한 진영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귀족노조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 일반 노동자들보다 몇배나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 매년 임금을 올리기에 안간힘을 쓴다. 그들의 파업으로 협력업체는 자동휴업상태가 된다. 그로 인해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노동자가 감봉의 위협을 겪게 된다. 혹은 실업의 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 일하지 않는 노조전임자는 가만히 앉아서 임금을 챙겨먹는다. 노조 자체도 직장 내에서 한 개의 권력이다.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노조가 조합원 모두의 이익을 헤아리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파업현장에 노조가 아닌 쟁의전문가들까지 등장한다. 쟁의전문가는 돈을 받고 파업을 해주는 일명 파업꾼들이다. 분명 이 측도 정상은 아니다. 이 측에 대해서도 몇가지 줄여보자.

1. 귀족노조는 자신으로 인해 같은 노동자가 힘들어지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2. 노조전임자는 일하지 않고 임금을 챙겨먹는다.
3. 노조 자체도 하나의 권력이다.
4. 파업현장에는 심지어 쟁의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우리 노동현장이 이런 모습으로 변질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개발경제의 유산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심지어 쥐꼬리보다 더 비참한 노동현실, 잔업과 산업재해, 질병에 시달려야 했던 과거, 노동쟁의가 잦았다. 그때마다 정부는 자본가를 위해 경찰이라는 공짜 용역을 제공해줬고, 자본가는 정부의 비호 아래 잘 살게 됐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하더니 자본가만 잘 살게 된 더러운 현실에서 노동자들을 똘똘 뭉쳤고, 동맹파업으로 동료를 위로했다. 정부의 곤봉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며 빼앗겨야만 했던 권리를 다시금 찾으려 했다. 파업이 익숙하지 않는 같은 처지의 노동자를 돕기 위해 쟁의전문가들이 현장을 찾아가 지도했고, 한 사업장이 임금인상에 성공하면 마치 모두의 기쁨인 듯 좋아했다. 그게 일명 좋던 시절이다.

  이 시점에서 모두의 말이 맞다는 양비론을 던져본다. 파업을 하면 기업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당연히 고객들이 기업에 대해 신뢰하지 않게 된다. 직장을 점거한 노동자에게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법으로 점유당한 개인의 사유재산을 지켜주는 것이다. 어찌보면 갑들이 떠드는 말이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의는 없다. 명분 없는 논리다. 갑들은 애초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쥐똥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야할 시점에 이야기 하지 않고, 마치 이조시대에 머슴부리듯 노동자를 대한다. 당연히 이런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갑들에게 을들이 반감이 생긴다. 그래서 뭉치는 것이고, 노동자에게 일은 생명과도 같기에 타노조보다는 일단 자신의 직장과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 하나의 가치로 뭉치지 못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노조 내에 일방주의가 생긴다. 파업을 쉽사리 성공시키지 못하기에 쟁의전문가들까지 고용하게 된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갑과 을의 문제다. 또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서로에 대한 반감이다. 우리는 노동의 앞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노동선진화는 어려운 구호가 아니다. 갑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직장 내의 보건과 복지에 힘쓰고, 자신의 얻은 소득을 을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을이 뾰루퉁해도 먼저 다가가서 말을 하고, 서로 등돌리기 전에 문제점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을은 자신들의 입장 만을 생각지 말고 과거처럼 함께 어려운 타직장의 동료들을 떠올려야 한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옳은 것인가 반문해야 한다. 갑과 을이 열린 마음으로 늘 대화하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한다면 무노조-무파업 경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늘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다면 또 그 창구가 법이든 윤리의식이든지 간에 상시로 이뤄진다면, 괴리는 깊어지지 않겠다. 또 정부가 일단 불을 끌려서 덤비기 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현명함을 갖어야 겠다. 갑이 을을 생각하고 을은 갑을 생각하고, 또한 을이 같은 입장의 을들까지 헤아린다면 누구도 비난 받지는 않겠다. 노동의 미래는 이와 같아야 된다고 본다. 열린 마음이 발전적인 내일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누구도 피해보지 않고 다 함께 나누고 갖고 가는 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갈피 없고 근본도 없는 미래산업을 준비하는 정부의 자세에 대해
"화두를 던졌는가! 미래의 먹거리인가, 현재의 뗄거리인가"라는 제목으로 풀어보겠다.

<copyright to NapSap, http://coc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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