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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대전발 19시24분

 

▶용무가 있어 철마에 몸을 실었다. 그 옛날 철마처럼 우둔하지도 않고 덜커덩 덜커덩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날렵하고 신속하게 목적지를 다다른다. KTX의 시대다. 도란도란 삶은 계란을 까먹고 사이다를 마실 틈도 없다. 두어개 까먹으며 차창 구경을 하다보면 어느덧 도착이다. 차창 구경도 호사다. 굴곡진 산맥마다 터널을 뚫어서 달리다 보면 귀가 멍하다. 속전속결의 시대다. 예전에는 명절 때나 구경할 법한 기차를 요새는 대중없다. 일 있으면 그냥 기차를 탄다. 기차도 많이 대중화됐다. 어린 시절엔 버스가 대세였다. 엄마는 버스 타기 전에 소변을 보라며 보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속버스에는 화장실이 없다. 멀미가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버스만 타면 시종일관 창문을 열어야 했다. 이제는 창문을 열지 않아도 차를 잘 탄다. 많이 컸다.

 

▶플랫폼에서 정해진 약속을 기다리며 시를 썼다. '쾌속열차가 철길을 지친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귀를 막을 기색도 없다'로 시작하는 시는 '과거는 묶여 있다. 미래는 빠르게 달음박질치고 있다' 비스무레하게 끝난다. 역전에 다다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을 오고간다. 사람들에게 역은 그저 한순간 지나쳐가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불항자들에게 역은 묶여 있는 공간이다. 그들은 역을 떠나지 못한다.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잘 산다. 지나치다가 어떤 이가 횡재라도 한듯이 누군가를 부른다. 그의 손에는 막걸리가 한병 들려 있었다. 막걸리 한병에 온 역전 분위기가 술냄새로 자욱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였으며 삼촌이고 이모였겠다. 그러다 하숫물이 아래로 고이듯 역전으로 몰려 들었다. 악취라고 말할 수 없다. 인생사의 단편이다. 한발 잘못 디드면 비슷한 신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희망의 기차를 탔다. 앞으로 넘을 산이 많지만 일단은 희망으로 심장이 두근이다. 서울은 일적으로나 사적으로 여러번 찾았지만 촌에서 상경한 처녀처럼 휘둥그레했다. 이리로 저리로 고개를 돌리고 사람구경하고 물건구경하니 눈이 호강이다. 잠시 머물지 오래 머물지 모르는 불확실이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옛말을 곱씹으며 동생집으로 향한다. 동생과 만나 저녁 겸사로 술밥을 먹었다. 일찍 들어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근처 성당에서 새벽미사를 드리고 태평로로 향할 것이다. 서울의 아침을 상상하는 밤이 참 달콤하다. 그 아침을 매일 매일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애초 연고는 대전에 두고 살려고 했는데, 막상 올라와보니 그런 생각도 접어진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온 반도의 호환마마와 영웅호걸들이 모인 이 곳에서 진검승부를 하고 싶다. 승부를 참 좋아한다. 진검승부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글을 쓰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행운을 얻고 싶었었다. 글쟁이라면 제가 쓰는 글이 밥알이 되는 것이 희망이다. 글은 안 쓰지만 글과 비슷한 제목을 쓰면서 제목밥을 먹고 살았다. 소박했던 밥벌이는 어느 순간 욕심으로 변했다. 일일이 침을 묻어가며 넘긴 종이매체들이 수십만장은 되겠다. 몸 속 어느 구석에는 잉크독이 배여 있겠다. 단순히 조금 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차지다. 본심은 조금 더 악독한 놈들과 겨뤄보고 싶다. 같은 조건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다. 오만심보다는 자신감이다. 이제 몇시간 후면 그동안에 해왔던 일들을 평가받는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꿈꾸던 서울살이를 하겠고, 못한 평가를 받으면 머물러 있겠다. 과거는 묶여있다. 미래는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빠르게 내달리면 미래가 된다. 묶여 있으면 과거가 되고 차창밖으로 멀리 잊혀진다. 빠르게 내달리는 사람이 되자. 마음 안에 천리마를 힘차게 고삐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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