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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봄비

▶창밖에 밤비가 소근소근하다. 봄비가 조근조근하다. 봄의 문을 살며시 열고 발을 들이밀어본다. 입춘이다. 클랙슨을 눌러대듯 시끌시끌한 말소리들이 싫다. 꽃잎의 속삭임을 듣는 듯 쎄끈쎄근한 말소리들이 좋다. 바닥에 조용한 울림을 전하는 봄비는 그래서 참 좋다. 그 가벼운 미동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낭창낭창하다. 남녁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새생명들의 타전소리 같다. 길고 짧은 음파들은 곧 다가올 그들의 메시지다. 구구짹짹 새소리를 듣는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깨는 아침은 행복이다. 출근 문턱에서 본데없는 새소리를 들었다. 나무덤불 사이로 도망치듯 날아오르는게 낯선 이를 봐서 그렇겠다. 낯선 곳을 온 손님같은 파닥거림이었다. 낯선 새였다. 봄을 알리는 전령이었던 것이다. 그 전령은 청자같은 빛깔의 날갯짓을 하며 푸드득 날아올랐다. 봄의 실오라기를 던져줬던 것이다.

 

▶봄은 始作하는 계절이다. 詩作하는 계절이다. 묵혀든 종잇더미들을 정리하다가 수년전의 메모를 발견했다. 詩作할 수 있다. 始作할 수 있다. 원숙한 시인은 가을에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미숙한 청춘의 펜은 봄여름에 춤을 춘다. 어린 것이다. 파도치는 생명들의 울부짖음에 몸 정신을 둘 바를 몰라 허둥데는 것이다. 봄이 始作하는 날에, 詩作의 始作에 대해서 계획을 잡아본다. 술찌개미에 취한 듯 푸근한 봄밤, '미지'를 탈고해야겠다. 여름의 지평선 너머로 소낙비를 쏟아낸 구름들이 서서히 모습을 감춰덴다. '구름'을 추가해야겠다. 궁리들이다. 시인의 이름을 가져야겠다. 완강한 외침이다. 시인의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박한 바램이다. 始作하는 것은 詩作하는 것 만큼이나 좋다. 始作은 각오가 필요하다. 용기도 필요하다. 계획도 세워야 한다. 詩作도 마찬가지다. 각오나 용기나 계획 만큼이나 골몰해야하고 구상해야한다.

 

▶동물들의 봄은 번식기다. 산란과 출산의 시기다. 생명을 품고 온전히 기르기엔 봄여름이 제격이다. 가을겨울은 품고 길러내기엔 척박하다. 지천에 널린 먹이들을 주서먹으면 부지런히 살을 찌워 생명을 길러내기엔 봄이 꼭맞춤이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봄만 되면 마음이 울어버린 창호지처럼 생긴 게 내 그것은 사람보단 동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묘사만을 추구하자고 펜을 들어도 금세 비유와 은유에 혼유되어 버린다. 찰랑거리는 감정의 수위가 얌전하지 못해서다. 始作하는 것은 들뜬 기분을 갖게 한다. 새해, 새봄, 새학기, 새신랑, 새신부, '새' 하나가 고이 날아와 단어 앞에 붙어버렸는데도 들썩인다. 새집, 새직장, 새인연, 이런 것들은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좋다. 심지어 새신발, 새가방, 새책상 등 별거 아닌 것들도 좋아보인다. 미묘한 '새'의 마법이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오묘한 '새'의 강복이다.

 

▶입춘대길이다. 선인들은 입춘에 저 네 글자를 손수 써서 문가에 붙여놨다. 입춘대길 얼마나 좋은 말이던가,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봄을 맞았으니 생명은 당연히 기뻐해야한다. 당장에 길조는 없지만 겨울을 버틴 것만으로도 대길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건양다경이다. 따뜻한 기운이 도니 온세상이 경사다. 봄을 준비하는 마음은 일년을 준비하는 마음이다. 스스로도 헤아려본다. 봄에 해야할 일, 여름에 할 수밖에 없는 일, 가을에 꼭 해두어야만 하는 일, 겨울을 위해 해야하는 일,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사람의 생은 바쁘고 심난하지만, 여러가지 일이 있어 생이 즐겁고 힘차기도 하다.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 헌신해야겠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용돈을 아껴쓰고 통장을 배불리야겠다. 아침저녁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여러 다짐들을 해본다. 여기에 한가지 더 덧붙여본다. 내년 입춘에는 결실의 기쁨을 회고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투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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