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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無爲로 끝난 박원순의 '입방정'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좋은 기회를 잡았다가 놓쳤다. 제왕은 하늘이 내고 재상은 백성이 낸다 했던가. 대적했던 당사자에게는 비보겠지만, 그로인해 박 시장이 다시 좋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박 시장은 수일 전 밤 긴급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에 노출된 35번 환자인 한 의사가 심포지엄과 재건축조합 행사에 참석했다며 당시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에게 자가격리를 당부했다. 사안이 시급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했던지라 대부분의 언론은 박 시장의 워딩을 그저 받아썼다. 논란은 차일부터 커졌다. 모 보수언론은 당사자인 35번 의사의 말을 빌어 '박원순이 대통령병에 단단히 걸렸다'고 포문을 열었다. 박 시장이 나서자 정부도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대책본부를 꾸렸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 시장에게 면박을 줬다. 재상은 백성이 낸다 서두에 언급했다. 정부가 박 시장을 못된 놈으로 만들었어도 여론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이는 댓글에서 '대통령인 줄 알았다'라고 평했다. 제왕은 하늘이 낸다고도 말했었다. 박 시장을 손가락질 하던 35번 의사는 결국 산소호흡기 신세가 됐다. 그가 거뜬 했다면 박 시장이 무안했겠다. 하늘은 결국 박 시장의 행동에 대해 옳은 평가를 한 셈이다. 박 시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 할일이 많다.


   우선 박 시장이 지난 메르스 브리핑 이후에 했었어야 했던 일들을 짚어본다. 서울시는 더 급박하게 메르스에 대처해야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포털을 통해 메르스 발생지역과 환자현황 등 다양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했다. 시 공무원 조직은 더욱 기민하게 움직여 온 거리로 나가 방역활동에 전념해야 했다. 박 시장도 영양가 없는 국무회의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거리로 나가 박 시장을 죽어도 안 찍어줄 것 같은 어르신들을 붙들고 마스크를 나눠주며 메르스도 홍보하고 박원순도 홍보해야 했다. 마치 서울시가 정부를 대신하는 것 마냥 메르스에 대해 적극 나서야 했다. 상황점검 같은 것은 박 시장 보다 유능한 행정가들에게 맡기고 그는 발로 뛰면서 자신을 알려야 했다. 이는 서울시 트위터 및 페이스북의 팔로어나 좋아요 숫자로 즉각적으로 나타날테고, 젊은이들에게 박 시장의 존재감을 더욱 굳건히 하는 동시에 진보세력도 어르신을 끔찍하게 챙긴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정부 '대신하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대신하기'는 어떠한 상대를 무력하게 할 때 사용한다. 상사의 역할을 대신하면 상사의 존재감이 줄어든다. 상사가 일을 훔쳐가는 듯 해보이지만 결국 그 윗 상사의 눈에는 다 보인다.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면 대통령의 존재감이 줄어든다. 부랴부랴 대통령이 무언가를 하는 척을 해도 결국 국민들 눈에는 다 보인다. 


   이제 35번 환자도 사경을 해매다 깨어나면 박 시장이 옳았다고 말할 것이다. 몇 푼 안되는 정치성향 드러내기 대신 목숨값을 건지게 됐으니 제대로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 못차려도 소용없다. 어짜피 신상정보는 털릴 테고 온전하게 개업의 활동을 하기는 글러먹었다. 다들 '의사가 그래서 되겠냐'는 말을 입에 달고 있기 때문이다. 35번 의사 분의 안부는 뒤로 하고 박 시장으로 돌아가보자. 정부에 밀려 약간 위축됐지만 다시 활동할 타이밍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일들을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서울시에서 메르스가 잡히고 국민들이 안심하게 되면 박 시장의 향후 행보도 한숨을 돌리게 된다. 박 시장이 현직 야권 대선주자 보다 유리한 점은 서울시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를 책임지고 그만큼의 예산과 행정력을 갖췄으니 시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얼굴 드러내는 행사를 만들 일도 많다. 앞서 브리핑처럼 존재감을 부각시킬 만한 일도 할 수 있다. 양보만 하다 끝난 안철수와 싸움만 하다 볼일 다보는 문재인, 상대적으로 중앙의 관심을 덜 받는 안희정 보다 훨씬 앞선 위치다. 여론조사서도 박 시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가했음을 보여줬다. 무성대장, 독무대라 칭해지던 김무성은 청와대 목전만 바라보는 꼴이 됐다. 정부는 '당장 눈앞에 터진 사건을 처리하는 일보다 외골수적인 어떤 이를 설득시켜 움직이게 하는 일'이 더 어려운 형국이다. 결국 모든 면에서 유리한 박 시장으로써는 돌격뿐이다. 후퇴는 후회만 남긴다.


   혹자는 박 시장이 메르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래 불편할 수도 있고 그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니 괘씸하기도 하겠다. 눈에 보이는 연극도 하지 않는 정부의 행태는 어떠한가. 그렇게 열렬히 지지해준 어르신들은 메르스 덕택에 바깥 구경이 힘들어줬다. 대통령이 관심 껐던 메르스가 가택연금을 시킨 셈이다. 노령연금 준데서 뽑아줬더니 가택연금도 받은 꼴이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오기는 다친 병졸의 고름을 입으로 손수 빨았다. 병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이랬다. 오기가 쟤 아비의 고름을 빨았는데 결국 그는 오기를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다 세상을 등졌으니 내 아들 또한 그리 되리라. 오기는 병사와 식은 밥과 한 잠자리를 함께 했다. 전략가로써 병졸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76번 싸워 64번 이기고 12번 비겼다. 눈에 보이는 액션이라도 해야 함은 여기에 있다. 세간에 하는 말이 무엇인가. 박 시장이 한밤에 긴급 브리핑을 하는데, '대통령은 아몰랑 미국 갈꺼야'라는 비아냥이 들린다. 미국에게서 빠꾸를 맞았다는 헛소문도 귀에 전해졌다. 꼴이 우스워졌다. 국민들에게 비치는 꼴이 비참해졌다. 한편으로는 자초한 셈이다. 메르스로 상당 기간 내수도 침체될 테니 정말 운도 지지리 없는 정권이다. 최경환이 하루가 멀다하고 정책을 찍어내며 겨우 경제에 온기가 드는가 싶더니 다시 냉랭해졌다. 연금개혁으로 인해 공무원 조직에 대한 신뢰도 잃었다. 메르스 관련 몇몇 브리핑 실수를 보면 그 내막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와 국민으로써는 비참한 꼴이지만 대권주자로써는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난세가 됐다. 난세에는 간웅이 나와야 한다. 누가 될까. 현재로써는 박원순이 유리한 편이다. 정치는 생물이라 했던가. 파도다. 파도를 잘 타야 한다. /납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