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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쓰다, 길게 쓰다

[돌팔매] 봄봄 ▶봄이 참 좋다. 냇물에 조근조근 속삭이는 곁에 파랗게 돋은 냉이를 캐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일광소독하듯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뻐꾹뻐꾹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아이걸음으로 소풍길을 내걸으며 안갯속에 모습을 감춘 저수지에 돌맹이 따위를 던지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똥거름 냄새 자욱한 밭길을 걸으며 물가로 뛰어드는 개구리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새색시 입김처럼 달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남녁소식을 들려주는 것 같은 몽환에 젖어들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햇볕에 잘 마른 포근한 빨랫감의 느낌처럼 살포시 온기를 전하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쮤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더보기
[돌팔매] 봄비 ▶창밖에 밤비가 소근소근하다. 봄비가 조근조근하다. 봄의 문을 살며시 열고 발을 들이밀어본다. 입춘이다. 클랙슨을 눌러대듯 시끌시끌한 말소리들이 싫다. 꽃잎의 속삭임을 듣는 듯 쎄끈쎄근한 말소리들이 좋다. 바닥에 조용한 울림을 전하는 봄비는 그래서 참 좋다. 그 가벼운 미동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낭창낭창하다. 남녁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새생명들의 타전소리 같다. 길고 짧은 음파들은 곧 다가올 그들의 메시지다. 구구짹짹 새소리를 듣는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깨는 아침은 행복이다. 출근 문턱에서 본데없는 새소리를 들었다. 나무덤불 사이로 도망치듯 날아오르는게 낯선 이를 봐서 그렇겠다. 낯선 곳을 온 손님같은 파닥거림이었다. 낯선 새였다. 봄을 알리는 전령이었던 것이다. 그 전령은 청자같은 빛깔의 날갯짓.. 더보기
[돌팔매] 유쾌하니 청춘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다. 김난도 교수가 쓴 이 책은 청춘의 심정을 난도질했다. 조선일보의 편집자는 '중국 청춘도 아프구나'라는 센스있는 제목을 뽑았다. 사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와 수험서가 그렇듯 누구나 할 수 있는 호언들을 줄줄이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촌철살인의 책제목을 단 편집자의 공이다.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편집자의 일갈은 한 저자를 젊은이의 멘토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청춘의 아픔을 제 아픔처럼 보듬기도 했다. ▶ 오래 연락하지 않았던 벗에게 문득 전화를 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으면 먼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시대다. 휴대폰을 들고 서울 어딘가에서 스탠드 불빛을 자양분.. 더보기
[돌팔매] 봄날은 간다 ▶ 계절이 돌아오면 회자되는 노래가 있다. 추억이 파고드는 가을날에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체 떠나간 우리를 떠올리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노래는 지금도 '잊혀진 계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이제 봄이다. 세상이 약동하고 초목이 푸르러지는 봄이 왔다. 시냇물 소리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도드라지는 계절의 전령은 차디찬 시절이 다 떠나갔음을 전한다. 들녁에서 고개를 드는 산야초의 싱그러운 내음은 이제부터 찾아올 생명의 교향곡이다. 우렁차다. ▶ 상우는 푸르른 봄날의 언저리에서 은수를 만난다. 대나무 잎파리들이 서로 힘겹게 부딪히며 이제금 찾아온 봄날을 소박하게 읊어덴다. 허나 봄날은 소리소문없이 가버린다. 신작로 위의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이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이.. 더보기
[돌팔매] 풋사랑 ▶ 달콤한 줄 알았는데, 한입 베어무니 비리다. 너무 새파란 사과였다. 색깔이 푸르디티한 아오리 사과는 원래는 쓰가루 사과로 불린다. 1930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개발된 아오리 사과는 간혹 덜 익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원래 파란 사과다. 파랗게 익은 아오리 사과는 원래부터 익은 사과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파란 사과가 풋사과다. 시고 떫은 풋사과의 맛을 시인들은 풋사랑과 비슷하다 했다. 시고 떯고 비린 사랑, 아마도 그 사랑은 모두가 품고 있던 첫사랑 보다 덜익은 풋사랑의 맛일게다. ▶ 가깝게 지내는 후배와 간단한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새빨간 사과같은 사랑을 많이 해본 그 후배는 지금도 풋사랑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풋사랑의 그녀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가진 돈이 없어 한시간 거리의.. 더보기
[돌팔매] 酒태백 ▶ 한잔 두잔 술을 먹다보면 얼굴이 빠알갛게 '홍조'가 된다. 그게 한병 두병 먹다보면 '인사불성'이 된다. 그렇게 1차 2차 먹다보면 '고주망태'가 된다. 횡설수설하게 되고 감정이 북받쳐 설왕설래하다보면 치고 받기도 하고 울고 웃기도 한다. 인간사 흥망이 한잔의 술에 담겨 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주태백'이 된다. 감정과 언어를 폭력적으로 다듬는 주폭이 돼 그럴싸한 한마디를 던지기도 한다. 개똥철학, 소똥철학들이 쏟아진다. 주취자의 떠드는 소리일 뿐인데 구리지 않다. 달콤하게 들린다. ▶ 이태백은 월하에서 홀로 술을 한잔 하다가 멋진 시를 읋었다. 얼마나 만취했는지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 소리없이 나를 따른다'라고 보았다. 다음은 은하수 저편에서 한잔 걸치자고 .. 더보기
[돌팔매] 금성과 나 한겨울 태양은 조금 북쪽에 가까운 언저리에서 진다. 지평선은 차갑게도 붉고 공기는 고단한 하루가 켜켜히 쌓였지만 깨끗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맑은 공기라도 더운 공기는 더럽게 느껴진다. 그 안에 기화된 도시의 퇴적물들이 섞여있는 느낌이다. 해가 모습을 감춘 후 제일 먼저 하늘을 밝히는 건 금성이다. 우리는 샛별이라고 부른다. 크리스찬들은 금성을 루시퍼의 화신쯤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석양이 물들 때나 동틀녁에 잠시 얼굴을 비추니 제 모습 다 보여주지 않은 음흉한 별이라고 수근거렸을 게다. 금성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금성과 태양의 궤적을 원으로 그려보면 그 원안에 수개의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다. 행성들이다. 목성이나 토성, 천왕성 등이 태양의 궤적, 황도 안에 자리잡고 있다. 간혹 카스토르나 폴룩.. 더보기
[돌팔매] 스물두살의 엄마 경조사가 잦아지면 나이를 조금 먹기는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나이서부터 맺어오던 인연들이 하나둘 집안에 대소사가 생기기도 하고, 그저그런 사람관계 때문에 억지스런 발걸음을 하기도 한다. 자살한 친구 아버지의 상가집에서 관을 메어보기도 하고, 아는 형님의 아버지 칠순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스테프가 돼 보기도 했다. 흔한 예처럼 자리나 잠시 차지하고 밥만 급히 먹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문득 파랗던 시기, 아무런 걱정 고민 없었던 때가 떠오른다. 추후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리라는 당연한 추측들이 그때는 없었다. 그저 사람 사귀는 것이 좋았고, 하루하루 사는게 달콤한 사과처럼 느끼던 때였다. 세시간을 달려간 평택이라는 도시는 이름 만큼이나 평탄한 택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는 서녁 하늘이.. 더보기
[돌팔매] 지금은 더워도 좋다. 팔월도 이제 다 갔다. 팔월의 마지막 날이다. 잦은 강우로 우리를 괴롭히던 여름이 멀리 달아나나 했더니, 아직 그 맹위를 거두지 않고 있다. 늦더위가 온 것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 가정들은 다시 창문을 닫고 기계에 의존하며 더딘 여름밤을 보내고 있다. 땀이 많은 사람들은 다시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면 더위를 잘 타는 승객들은 온도조절을 못 하는 기사에게 애꿎은 볼멘소리다. 다들 뒷더위에 힘겨워한다. 하지만 지금은 더워도 좋다. 아니 더 더워도 충분히 상관없다. 늦은 여름이지만, 이른 가을이기도 하니까. 나무가 바쁜 계절이 왔다. 밤이면 지난 여름 내린 단비를 찾아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어야 한다. 낮이면 사방에서 내리쏟는 광휘에 온몸을 내맡겨야 한다. 그 분주한 안간.. 더보기
[돌팔매] 라흐마니노프 왈츠 퇴근을 하고 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연히 돌린 라디오 채널에서 멋진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제목도 모르고 작곡자도 모르고 연주자도 모르고 단지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연주를 감상할 뿐이었다. 담배를 두어대를 필 동안에도 연주는 끝나지 않았고, 연주가 마무리가 된 후에야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나올 수 있었다. 누구라도 가끔 이런 경험을 하겠다. 운전 중에는 집중하지 않던 것이 시동을 끄는 순간 귀에 쏘옥하고 들어온다. 운전뿐만 아니다. 평상시에 무언가에 빠져 생각지도 않던 것들이 문득 그 단단한 긴장감의 끈을 풀어버리는 순간 눈에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입추가 왔다.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지겨운 장마비와 밤잠 설치는 폭염도 어젯일이 됐다. 거리에 나서면 바람 부는게 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