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가 잦아지면 나이를 조금 먹기는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나이서부터 맺어오던 인연들이 하나둘 집안에 대소사가 생기기도 하고, 그저그런 사람관계 때문에 억지스런 발걸음을 하기도 한다. 자살한 친구 아버지의 상가집에서 관을 메어보기도 하고, 아는 형님의 아버지 칠순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스테프가 돼 보기도 했다. 흔한 예처럼 자리나 잠시 차지하고 밥만 급히 먹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문득 파랗던 시기, 아무런 걱정 고민 없었던 때가 떠오른다. 추후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리라는 당연한 추측들이 그때는 없었다. 그저 사람 사귀는 것이 좋았고, 하루하루 사는게 달콤한 사과처럼 느끼던 때였다.
세시간을 달려간 평택이라는 도시는 이름 만큼이나 평탄한 택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는 서녁 하늘이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노친네같다. 시절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고, 지난 주말에 내린 비는 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고급을 가장한 공장식 뷔페에 들어선다. 대소사를 찍어내는 윤전기같다. 급한 사람들이 급히 들어와 밥을 먹고 박수를 치고 떠난다. 몇몇은 봉투만 전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한 외국인이 우리네 경조사 문화를 업수히 여기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민 모두가 없이 살던 시절, 이웃의 애경사를 돕기 위해 내밀던 봉투 문화, 그로인해 무사히 집안행사를 치룰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어찌보면 '봉투 문화' 자체도 한민족의 끈끈한 정이 아닐까?
스물두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왔다. 간단히 인사를 건네는데 아이가 픽하고 울상을 지었다. 꽤나 까탈스러운 아이다. 문득 스물두살의 엄마의 열여덟살 시절이 떠오른다. 꽤나 까탈스러운 소녀였다. 소녀는 지금도 소녀티를 벗지 못한다. 속도위반이나 실수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랑이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다. 문득 그 소녀가 엄마로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철부지이지만, 제자식을 가슴 뜨겁게 사랑하는 한 엄마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이같다.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다. 자식이기 보다는 조카 같고 동생 같은 아이를 얼르고 달래는 것이 스물두살의 우리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할매라고 놀리는 못된 아들놈이 문득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했던 애기 때 모습을 투영해본 것이다. 장소가 다르고 시간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그 옛날의 운치나 현대의 세련미도 없지만, 사람 사는게 비슷하다. 스물두살의 엄마나 옛날 스물두살의 내 엄마나 같은 엄마다.
밤거리를 가득 덮은 어스름은 계절을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올라온 길을 거꾸로 다시 내려오는 귀환길엔 나와 같거나 혹은 조금 다른 이유로 각자의 여정을 마친, 혹은 시작하는 동행인들이 가득했다. 자동차라는 것은 참 편리한 물건이다. 기름만 넣어주면 어디든지 거침없이 간다. 재를 치우거나 하는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늦가을의 거리는 그 옛날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들이 평평하게 펴졌고, 자동차도로다 고속도로다 하면서 큰 길들이 많이 생겼다. 강산이 십년이면 뒤집어 진다는데 요새는 십년이 멀다한다. 빠르게 오고가는 불빛 속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어질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고 온 사람은 스물두살의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스물두살의 엄마가 있는 한살의 어린 아이를 만나고 온 것이 아닐까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한살의 어린 아이는 삼십년 전의 어린 나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가운 바람이 호주머니 속에 구겨둔 시간들을 펴내게 하는 그런 날이다. 늦은 가을이라서 더욱 그렇다.
세시간을 달려간 평택이라는 도시는 이름 만큼이나 평탄한 택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는 서녁 하늘이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노친네같다. 시절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고, 지난 주말에 내린 비는 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고급을 가장한 공장식 뷔페에 들어선다. 대소사를 찍어내는 윤전기같다. 급한 사람들이 급히 들어와 밥을 먹고 박수를 치고 떠난다. 몇몇은 봉투만 전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한 외국인이 우리네 경조사 문화를 업수히 여기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민 모두가 없이 살던 시절, 이웃의 애경사를 돕기 위해 내밀던 봉투 문화, 그로인해 무사히 집안행사를 치룰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어찌보면 '봉투 문화' 자체도 한민족의 끈끈한 정이 아닐까?
스물두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왔다. 간단히 인사를 건네는데 아이가 픽하고 울상을 지었다. 꽤나 까탈스러운 아이다. 문득 스물두살의 엄마의 열여덟살 시절이 떠오른다. 꽤나 까탈스러운 소녀였다. 소녀는 지금도 소녀티를 벗지 못한다. 속도위반이나 실수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랑이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다. 문득 그 소녀가 엄마로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철부지이지만, 제자식을 가슴 뜨겁게 사랑하는 한 엄마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이같다.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다. 자식이기 보다는 조카 같고 동생 같은 아이를 얼르고 달래는 것이 스물두살의 우리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할매라고 놀리는 못된 아들놈이 문득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했던 애기 때 모습을 투영해본 것이다. 장소가 다르고 시간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그 옛날의 운치나 현대의 세련미도 없지만, 사람 사는게 비슷하다. 스물두살의 엄마나 옛날 스물두살의 내 엄마나 같은 엄마다.
밤거리를 가득 덮은 어스름은 계절을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올라온 길을 거꾸로 다시 내려오는 귀환길엔 나와 같거나 혹은 조금 다른 이유로 각자의 여정을 마친, 혹은 시작하는 동행인들이 가득했다. 자동차라는 것은 참 편리한 물건이다. 기름만 넣어주면 어디든지 거침없이 간다. 재를 치우거나 하는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늦가을의 거리는 그 옛날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들이 평평하게 펴졌고, 자동차도로다 고속도로다 하면서 큰 길들이 많이 생겼다. 강산이 십년이면 뒤집어 진다는데 요새는 십년이 멀다한다. 빠르게 오고가는 불빛 속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어질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고 온 사람은 스물두살의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스물두살의 엄마가 있는 한살의 어린 아이를 만나고 온 것이 아닐까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한살의 어린 아이는 삼십년 전의 어린 나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가운 바람이 호주머니 속에 구겨둔 시간들을 펴내게 하는 그런 날이다. 늦은 가을이라서 더욱 그렇다.
<from NapSap,Parakshert Doyof, http://coc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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