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참 좋다. 냇물에 조근조근 속삭이는 곁에 파랗게 돋은 냉이를 캐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일광소독하듯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뻐꾹뻐꾹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아이걸음으로 소풍길을 내걸으며 안갯속에 모습을 감춘 저수지에 돌맹이 따위를 던지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똥거름 냄새 자욱한 밭길을 걸으며 물가로 뛰어드는 개구리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새색시 입김처럼 달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남녁소식을 들려주는 것 같은 몽환에 젖어들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햇볕에 잘 마른 포근한 빨랫감의 느낌처럼 살포시 온기를 전하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쮤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모래바람냄새 자욱한 운동장에서 하늘을 가르는 솔개의 멋진 날갯질을 바라볼 때 하고 싶은 말이다. 봄이 참 좋다. 봄이라서 참 좋다.
▶봄은 소풍이다. 유년의 봄은 소풍의 기억이 전부다. 프라이드치킨을 싸오는 친구들이 부럽긴 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엄마표 계란옷 입은 김밥이 있었고, 보물찾는 재주없어 쩔쩔맬때 자랑하듯 하면서도 너 가져라 하면서 자기 보물표 중에 한개를 건네줬던 친구도 있었고, 아침이면 세상은 온통 안개옷을 갈라입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던 소풍길도 있었다. 소풍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찾아 뛰어다녔고, 동네냇가 버드나무가 얼마나 자랐나 보면서 조금 더 있으면 가지를 붙잡고 타잔놀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돌돌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물에 빠지기도 하고, 돌을 쌓아 징검다리를 댐으로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유년의 하릴없는 소일거리들, 그 잔잔한 파문들은 지금은 훌쩍 자라버린 청년의 가슴에 풀한포기를 심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도시, 아이들에게 봄을 추억할만한 아무런 것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창피한 도시, 청년은 그 창피한 도시에 살면서 가슴 속 풀한포기를 어루만지고 있다.
▶봄날은 간다. 붙잡을 수가 없다. 봄날. 봄날을 따라서 유랑이라도 하고 싶다. 마음 속의 나침반, 지돗길을 따라 정처없이 풀린 꼬삐가 되어 버리고 싶다. 봄날에는 떠나는 봄날이 아쉬워,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듣고, 유지태, 이영애 주연의 '봄날은 간다'를 보고, 기형도의 '봄날은 간다'를 읽는다. 그것도 아쉬우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절반쯤 읽다가 내팽개쳐 버린다. 건어물을 말리듯 들마루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흉을 보든 머하든 녹푸른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로 봄볕이 드나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은 그런 날이 봄날이다. 별일이 없어도 마음 속이 심난심난해져서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게 되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도 예사롭게만 보이는 그런 날이 봄날이다. 봄날이 가버린다는 한귀퉁이의 허전함 때문에 한분한초라도 더 즐거이 봄날 속에 있고 싶어서 궁리에 궁리를 더하는 그런 날들이 봄날이다.
▶이제 곧 봄이 여장을 푼다. 보자기를 풀어헤치고 우리네에게 줄 선물들을 훌훌 꺼내보인다. 누구에게나 다 쥐어줄만큼 풍성한데 봄은 심술궂다. 봄을 찾고 봄을 진정 즐기려는 사람에게 봄은 제 가진 것 다 내어준다. 아침저녁 가끔이나 봄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빈주머니만 털털 털어 보여줄 뿐이다. 봄을 즐기는 방법은 봄을 괴롭히는 것이다. 산으로 들로 봄을 만나러 다니고, 골짜기며 지천에 풍성하게 열린 봄을 쥐어 뜯고, 언덕에 올라 쉬이 날아가는 봄을 훼방놓는다. 심술 궂지만 봄은 따듯하다. 아무리 괴롭혀도 봄은 오히려 괴롭힘이 좋은 것 같다. 생동하는 것이 봄이니까 사람들이 봄을 괴롭히면 봄은 그 생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좋아서 흐믓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제 서서히 봄날이 다가오고 있다. 계절적 절정은 한달반여 남았다. 이번 봄에는 신나게 봄을 괴롭혀볼 생각이다. 딴지놓고 뒤적거리고 쏘다니며 봄을 괴롭혀 진짜 따뜻한 봄날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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