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은 52주다. 신문이 안나오는 일요일을 제외하면 신문이 나오는 날은 313일이다. 보통 한개의 일간지에서 광고가 없는 지면을 일 평균 32면 정도 만들어 낸다. 하루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한국경제의 10종을 기사까지 꼼꼼히 보고, 나머지 신문은 1면 정도를 보는데, 나머지 신문을 제외하더라도 하루에 320개 정도의 면을 본다. 일년이면 10만160면이다. 만으로 따진 근무년월수로 환산해보면, 내가 2011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편집을 시작했으니 27개월, 그동안 20만8666개의 지면을 본 셈이다. 그 지면 중에 스크랩한 지면을 세로로 세우면 60여 센치미터가 된다. 일일이 세보지는 못했다. 일일이 헤아리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근무외 편집을 따로 공부했던 것이 2시간, 실습으로 여길만한 제대로된 근무시간 6시간, 일평균 8시간, 주말에도 신문을 보기는 하지만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제외하면 일년에 2088시간이다. 만으로 따진 근무개월수로 환산하면 4350시간이 된다. 누구나 일만시간만 투자하면 그 분야에 정평한 사람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편집에 정평하기까지 아직도 내가 쏟아야할 시간이 5650시간이나 남았다. 언젠가는 채워질 것이다.
일전에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나름 호기로 조금 빨리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상을 이제야 타게 됐다. 나름 집착이 아닌 집착을 했다. 누군가들의 수상 소식을 들으며 나도 저것을 꼭 받아보고 싶다. 나이를 더 먹기전에 만으로는 3년도 안된 루키로써 이 세계에 작은 이름자를 세기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틀리지 않았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을 보상받고 싶었었다.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보상이다. 부장은 안그래도 뜰려고 마음 먹고 하는데 이제 날개를 달았다며 더 뜰라고 안달날 것이라 했었다. 부장은 뱀의 머리가 되던지 용의 꼬리가 되던지 알아서 잘 선택해보라고 했었다. 그 문제가 아니다. 남자는 한번 자기가 무언가 일을 맡으면 정평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에 자부심도 없고 그저 하루를 떼우면서 살아간다면 그 남자는 가정도 건사하지 못할 무능력한 사람이다. 전 직장에서 보고서를 32번이나 빠꾸를 먹은 적이 있었다. 파견계약직으로 들어가 전임팀장으로부터 나름 인정을 받고 곧 있을 공채 때 채용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갑자기 인사발령이 있었고 팀장은 바뀌었다. 후임팀장은 전임팀장의 확약 따위는 신경 안하던 사람이었다. 내칠라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후임팀장은 전임팀장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후임팀장에서 인정을 받고자 보고서를 쓰고 또 쓰고 하루에 결제를 3~4번씩 맡아가면서 32번을 빠꾸를 받아 사업계획서를 통과시켰다. 공무원 조직은 문서가 생명인 조직이었다. 그는 철저한 문서주의자였고 난 부딛혔고 결국 그에게서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냈었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살았다. 컬이 긴 곱슬머리를 갖고 싶었는데, 서른해 넘어 알고보니 내가 컬이 긴 곱슬머리 였다는 것을 안 것처럼, 끈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알고보니 난 끈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을 생각하면서 마냥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못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지나고 보니 난 편집을 사랑하고 있었다. 눈앞에 귀전에 들리는 모든 순간들을 편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현상을 보고 제목을 달고 레이아웃을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메모하고 머릿속에 기억했다. 남들이 잘한 것은 스캐너처럼 복사해 뇌안의 저장장치에 담았다. 담고 담다 보니 면에 실릴 기사를 쭉 뽑으면 레이아웃이 그려지고 기사배치가 자연스러워지고 뉴스를 읽다가 재미있을 만한 피셔가 있으면 동료 취재기자들에게 귀띔을 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식당메뉴판에 오타라도 있으면 너무 불편해서 견디지를 못했다. 그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난 정말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과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나니까 아마 굉장히 해맑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언젠가 기반이 갖춰지면 다른 일을 시작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편집을 하고 있는 이상 권좌를 노려볼 만큼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회사일로 허투루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일도 시간이 많다. 항상 목요일에는 주말은 되도록이면 루즈하게 보내자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신문을 보고 있고 기사를 읽고 있고 뉴스를 체크하고 있고 스크랩자료를 정리하고 있고 제목단어장을 정리하고 있고 노래방책부터 시집이나 베스트셀러제목 등 함축의 성질을 가진 모든 것을 탐하고 있었다. 어느덧 편집쟁이가 되었나 보다. 편집을 너무 사랑하는 편집쟁이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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