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의 옷자락을 밟고 지나듯, 하나둘 소멸하는 불빛들을 뒤로하며 집으로 향한다,
감나무 가지 위로 문득 시퍼런 독기의 눈을 한 시리우스의 광채가 불타고 있다,
항성은 불타고 있다, 항상 불타고 있다, 불타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불을 필요로 한다,
불타는 것은 연소다, 불만이 아니라 사람도 짐승도 풀사귀들도 세포 속에서 끊임없는 연소한다.
연료를 태워 열량을 얻어내는 연소는 생명이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연소가 있어야 생명 취급이다,
한참의 몇달을 연소없이 보낸 것 같다, 삶의 에너지를 태워내지 못한 것이다, 불완전연소다,
그을음과 매캐함의 시기였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일정 부분은 습관이었다,
하는 일에 열과 정을 태워내었지만, 손 안씻고 화장실을 나온 것 같이 불쾌함을 걷어내려는 습관이었다,
새로운 문을 열고자 하는 시도도 몇차례 있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시기가 이른 탓일게다,
시기보다 어찌보면 준비가 덜 된 탓일게다, 그러나 한조각의 일상에서도 게으름을 허락하진 않았었다,
매일의 기도문이 "주님 오늘도 게으르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는...."으로 시작하듯 그렇다,
한편에서는 못된 성미를 반성하기도 한다, 사람을 잘라내는 것들을 너무도 쉽게 해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한 심정적 레지스탕스였다,
나는 나한테 잘하는 사람한테는 잘한다, 나를 최고로 치는 사람에게는 자다가도 뛰쳐 나간다,
온 몸이 부서질듯 아픈 날에도 나를 필요로 하면 항상 거절하지 않았다, 신의에 대한 보답이자 의리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차가운 금속이다, 날카로운 칼이다, 만지려 하면 쉬이 베버린다,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았음에도 왠지 몽롱이다, 몽환이다, 별빛이 백사장의 모래처럼 우주의 파도에
밀려와서 그렇다, 무언가 골치 아픈 숙제를 맡았다, 즐겁다, 골치 아프기에, 골치가 아프다는 건,
골치가 아플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기에 그렇다, 신종연료를 주입받은 기관같다, 활활하다,
요새는 일보다 사람에 열을 쏟고 싶다, 한 사람에게 정을 주고 싶다, 활활하고 싶다,
봄날을 기다리는 곰의 마음이다, 허나 인연은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창한 기대가 않는데도 말이다,
음성으로 활자로 연락하고, 간단한 다과를 함께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서로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상대의 힘겨웠던 하루를 위로 하는 것,
어찌보면 간단한 일들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영혼의 동행을 얻는 일이다,
매사 궁리 속에서 살지만 저런 부분에서 계산적이지 않다, 어느 훌륭한 카피처럼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괜찮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능성 또한 못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
지인들의 현재만 보지 않아왔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산다, 당장의 얄팍한 이들은 사라져 갔다,
This is Moment, This is Day,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시끌시끌, 북적북적, 왠지 그럴 것 같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 나를 즐거이 만드는 일들이 저 골목을 지나면 불쑥 고개를 내밀 것 같다,
불안요소도 있을게다, 말이 많으면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선 난 말이 없으니,
주변에 주워 담을 만한 말 자체를 하지 않으니, 잠잠할수도 있겠다, 소박하니, 과욕에 치일 일도 없다,
막연한 느낌이 드는 신새벽이다, 막연하다, 막연 조차도 막역하게 느껴지는 그런 신새벽이다.
허나 걱정없다, 오히려 희망적이다, 빈도화지처럼 앞으로 채워나갈 그림이 많으니 어찌보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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