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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記

신춘이라는 열병, 혹은 염병



신춘이라는 열병을 앓을 시즌이 왔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공고가 떴고, 그외의 신문사에서 신춘공고가 떴다, 신춘은 설레임이다,

이름없는 시가 싹을 튀우는 봄처럼, 세상에 싹을 틔우기를 기대하는 시기다, 신문사에 있지만, 거창하게 신문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제목을 쓰는 사람이니 그래도 글을 쓰는 축에 약간의 자리나마 차지하겠다,

설레임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시를 처음 접한 건 문학교과서였다, 문학교과서에서 시를 접하고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마음 먹었으니,

문학교과서 편수자들도 헛일은 안한 셈이다, 시를 쓰자 마음 먹었던 건 다른 이의 시를 읽고, 나의 시를 쓰고, 그 모든 과정에서 설레임을,

느끼기 때문에 그랬었다, 이문구 시인이 최근에 네번째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 설레임을 다시금 느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술을 탐구하게 되고, 하는 일이 언어적 기술에 관련된 일이니, 한동안 설레임이라는 단어는 잊혀졌었다,

아주 쉬운 글, 잘 읽히는 정말 쉬운 글을 접속사 하나 없이 쉬이 읽히도록 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문장 하나 하나가 정말 짧으면서도,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생명작용처럼 읽히는 글은 정말 어려운 글이다, 곰곰히 생각하니 그런 글은 또한 기사와도 닮았다,

다른 이의 감흥을 이끌어내는 글, 그런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던 지난 십수년의 세월들, 사주를 잘 보는 지인이 내게 했던 말들,

넌 시로 인정을 받으려면 늙을 때나 되야 그렇게 될꺼라고 한 말들, 시가 아니어도 글로 먹고사는 요즘, 그의 운명철학은 절반은 틀렸다,

다가올 봄의 설레임을 기대하며, 그에 반하는 실망감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올해는 한국일보에 내봐야겠다, 과작의 펜이니, 

다섯편을 맞추기는 힘들고, 대작병도 있어 마음 먹고 쓰는 건 시 한편이 20매가 넘기도 한다, 지난해 물먹었던 것들과 최근에 새롭게

쓰던 것을 잘 골라서 세편 추려내야겠다, 원고를 뽑아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이는 기분으로 등기를 보내고, 하루하루 설레임으로,

겨울을 보내다가 신년에 "그렇지 뭐"라고 실망하거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뻐하거나 하는 둘 중에 하나의 기분은 들겠다, 

설레임이란 참 좋은 감정이다, 매일매일 느끼고 싶다, 몇일 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이상한 징크스가 있어,

두번째 만나는 날에 바람을 맞춰 우스운 놈이 됐지만, 바지가랑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의 절망을 혼자 안고 있는 듯한 사람에게,

"죽으면 편해"라고 더럽게 쿨하게 말하는 나지만, 요새들어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문득문득 든다, 퇴근길에 집구석에서 퍼지는 보글보글 쫄대기김치찌개 냄새가 맡고 싶어지는 그런 시기다, 

나도 그냥 나이를 먹었나 보다, 늙으면 약해진다고 했었다, 몸이 늙은게 아니라 마음이 늙은 것 같다, 늙은 사람들이 아픈 것은,

늙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아픈데 젊어서 모르다가, 늙으니까 평상시에 아픈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이라 한다, 뭔가 늙었나보다,

퇴근길에 매경 가판을 보니 내일은 연애운이 좋으니 어떻게든 바지가랑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꼭 눈을 마주쳐 보고 싶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마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마음의 언어로 대화하고 싶다, 바람 맞춘 나는 참 송구스럽지만 말이다,

부서 첫 회의를 참석했다, 판 짜는 아저씨처럼 그냥 앉아 있었다, 내가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나는 말을 참 아끼는 편이다,

말을 피곤해하는 편이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나랑 같지는 않다, 문득 머릿속에 헤겔의 철학이 현대 정치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말을 쉽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해 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중학생도 이해하게끔 하는 게 내 역할이자 숙명이다,

쉽게 제목을 썼다고 해서 쉬운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정신상태가 썩은 사람이다, 애초부터 우리가 하는 일은 취재기자와 독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임무다, 내가 살짝 눈치준 기사가 1면 톱이 됐다, 지금 써야할 기사고, 이런 방향으로 써야할 기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접속사 없이 문장을 짧게 치면서 쓰다보면 끝맺음이 힘들다, 행여 검색으로 누군가 들어와서, 혼자 집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자기 하루를 한탄하며 쓰는 일기를 재미읽게 읽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써보는데, 글자 포인트도 작고,

글잣수도 많기에 스크롤이 쉬이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 글로 꿈을 이룬다는 것 역시 어렵다,

내년에는 시인의 명함을 갖고 싶다, 신춘, 가슴 떨리는 일이다, 다리도 후들후들 떨리는 일이다, 열병의 시기가 왔다, 신춘의 열병이다,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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