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된 기형도 시인의 어머니가 한글을 깨치셨다, 시대의 文靑의 어머니가 文盲이라니 아이러니다, 어릴 때 엄마는 내가 공부할 때면,
옆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셨다, 커서 이름 없는 시를 썼을 때, 우연히 찾은 엄마의 비밀노트에는 몇 개의 시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준 엄마는 가끔 시집을 보신다, 요샌 등산에 빠지셨는데, 이미 나는 다 커버려서 산가는 습관을 들이기에는 글러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故 기형도,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을 덧붙여본다, 창작물 외에는 이런 거 안올리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 아니던가,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남는 것은 이름 뿐, 그의 이름이 회자되면 회자될수록,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납삽
봄날은 간다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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