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Culter Club/論

[영화리뷰] 타이페이카페스토리, 잔잔한 여름비 같은 영화다.

 

 

   차분하다. 잔잔하다. 여름비 같다. 따뜻하게 몸을 감싸는게 담요 속 같다. 소나기가 온다. 소나기는 여름비다. 여름비지만, 왠지 따듯하다. 무더운 것과는 사뭇 다르다. 느낌이 알싸하게 따스함이 느껴지는게 왠지 夏중에 春을 만난 것 같다. 취중에 옮겨지는 나의 활자는 표음문자와 같다. 40층이 넘는 건물이 눈 앞에 그려진다. 아무도 없다. 사람이란 건 낙서 하나 없다. 마천루를 지은 건축가의 노고가 무위로 그치는 순간이다. 주차장은 한없이 그려져 있다. 한대도 정차한 자동차가 없지만, 주차장은 묘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쓸쓸히 신문을 보는 한 독자가 있다. 아무도 없는 무공이지만, 누군가는 신문을 읽고 있다. 잔잔하게 여름비가 가슴을 데운다. 알싸한 느낌이 코 끝을 간지러인다. 한개의 신호가 지나간 자리에 한개의 자취가 남는다. 

  중국말을 좋아한다. 뜻을 알 수 없지만 왠지 알 것 같다. 중국영화를 좋아한다. 구미영화는 백만개를 가져다 줘도 바꿀 수 없다. 중국영화를 볼 때는 술을 즐긴다. 술은 기척없는 변화같다. 냅킨에 많은 활동사진을 그려져 있는데, 그 사진들이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캘수록 다르다. 뒤집고 앞면을 보고 코를 풀고 버려도 같은 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한개의 그림에 한 개의 기억이 덧데여 진다. 그림과 이야기는 물물교환의 성질의 물건일까. 만약 세계만물이 있는 곳이 있고 당신은 무엇이든 가져와서 바꿀 수 있다면 무얼 가지고 와서 무얼로 교환할까.

  잔잔한 이야기가 있다. 그림보다 잔잔한 이야기다. 호수는 오히려 심난하다. 파열문양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잎새의 낙하는 세계를 혼란하게 한다. 사실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한 디자이너가 카페를 열었다. 할일없는 동생이 도왔으며 아이디어를 냈다. 사람들은 물건을 가져오고 주인은 합당하면 무엇이든지 교환해줬다. 별다른 건 없었다. 타이페이가 있고 덧붙이듯 사람들은 기억을 도시의 청사진에 그려댔다. 사실 대만이나 한국이나 별다른 차이는 없다. 격한 광뚱어만이 다를 뿐이다. 특별하다. 왜 특별할까. 유채같은 수채화의 풍경이 특별할까. 기분탓일까. 몰래 그려버린 그림 탓일까.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그저 심심한 영화다. 한 여성이 카페를 열었고, 동생이 도왔으면 결국엔 동생 소원을 언니가 이뤘다는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다. 문득 동남아에서 본 밤하늘이 떠올랐다. 이국의 향기는 나의 가슴을 심하게 흔들거렸다.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것은 흥겨운 소일거리다. 낯설음이 타성에 젖은 낯익음을 심하게 때린다. 에밀레종이 33번째 울림을 하고 1번째 울림을 더한다. 이 영화가 특별할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해보련다. 대만의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별다를 건 없다. 서울 외곽을 도보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피부색이 같은 주인공이 등장해서, 동생과 커피잔을 뜨겁데 달군다. 한양반도에도 충분히 있음직할만한 사건이다.

  영화의 즐거움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필자는 중국영화를 좋아한다. 찾아서 볼 정도로 매니아다. 중국음성이 좋고 풍경이 좋고, 배우도 좋다. 볼만한 중국영화는 헐리웃 대작무비 안 부럽다. 추천을 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잔잔함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이 느끼겠다. 잔잔히 흉곽을 스미는 가깝지만 또 낯설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다. 기대하는가! 무엇을 기대하는가! 사실 기대할 것도 없다. 그저 젖는다. 풍광에 젖는다. 잔잔함에 젖는다. 여름비가 세차다. 여름의 비는 세차기는 하지만 잔잔한 면이 더 많다. 잔잔함을 이야기 하고 싶다. 예술성을 논하기에는 필자는 어리고 어리숙하다. 기분만 가져갔으면 한다. 잔잔히 포문을 넓히는 잎새의 착지처럼, 어느 한 밤에 잔잔함에 대해서 심려하고 싶으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를 봤으면 한다. 



<copyright to NapSap, http://cocc.tistory.com>
<출처를 밝히지 않는 무분별한 펌질은 고소와 고발의 대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