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개의 별이 있다. 희미하지만 또렸하고, 밝진 않지만 뚜렷하게 빛난다. 스타라는 이름을 갖진 않았지만 101개의 작고 힘겹게 피어오르는 희망이다. Mnet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프로듀스 101'은 아이돌그룹 지망생 소녀 101명이 경연을 펼친다. 신문에서 두어번 읽고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두어번 본 그들의 모습은 예쁘다기 보다는 치열하다. 101개의 흙수저다. A-B-C-D-F의 5등급으로 나뉜 소녀들은 주어진 노래와 율동을 해내면서 '국민'이라는 프로듀서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머리칼을 휘날리며 온몸으로 열정과 끼를 발산한다. 금수저가 되기 위해 온몸으로 흙을 털어내는 흙수저다. 누가 흙을 다 털어낼까. 저 흙을 털어내면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가 될까. 두고볼 문제다. 소수 만이 선택될 것이고, 나머지 다수는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운이 좋아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하겠다. 선택된 소수는 그들이 꿈꾸는 '소녀시대'가 될 수도 있고. 짧게 활동하다 그냥 '소녀'로 남을 수 있다. 소녀들에겐 참 잔인한 프로그램이다.
걱정이 됐다. 신문 사회면이 참 잔망스럽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던 출연자의 부음 소식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을 술집 잡부처럼 부른다는 있는 자들의 얄긋한 취미까지, 이른바 '아는 게 병'인 탓이다. '처지를 비관해 결국' 이런 류의 소식은 절대 나와선 안된다. '전직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라는 단어를 뉴스에 쓰는 일도 없어야겠다. 세상은 온통 경쟁이다. 퇴보는 필연이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뽑는 수는 정해져 있다. 필요한 만큼만 뽑는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 군데군데 원서를 넣다보니 경쟁률이 껑충이다. 수십대 일 수백대 일이 다반사다. 101명 중에서 10명만 아이돌그룹이 되는 행운을 누려도 10대 1이다. 나머지 91명은 잠시나마 국민들에게 관심 받던 행복만을 자위해야 한다. 누군가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했다. 한잎 더 가지지 못한 불행이 행복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차후에 소녀들이 어떠한 불상사 없이 한잎 더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추억했으면 한다. 상처 받기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배끼기고 어찌보면 범위의 경제이기도 하다. 많은 오덕후들이 눈치를 챘다시피 '프로듀스 101'은 일본의 국민 아이돌인 AKB48의 복사판이다. 48은 48명이 활동한데서 48이 아니다. A-K-B-4-8의 총 다섯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고, 정규 멤버와 연습생까지 합하면 130명을 넘어선다. 매년 이른바 '총선거'를 통해 활동 멤버를 정하니 참 민주주의적인 아이돌그룹이다. 멤버가 130명이나 되니 데면데면한 관계도 참 많겠다. 지하철역이름을 외우는 개그맨처럼 맴버 130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놀이도 재미삼아 하겠다. 재미난 것은 130명 자체가 '상품'이라는 점이다. 소녀시대 10명이라고 치자. 그 중에 잘나가는 멤버도 있고 인기가 썩 좋지 않은 멤버도 있겠다. 기획사 수익의 대부분은 인기 좋은 맴버들에게 나오겠지만 10명이 덤벼들어 조업을 하니 배에는 소녀시대 '덕후'들이 만선이다. 하물며 130명이라면 어떨까. 조업 수준이 아니라 바닷속을 온통 긁어버리는 '쌍끌이'가 된다. '오덕후'와 '오덕후를 욕하던 자'들의 온갖 취향을 배려하니 기획사는 배를 떵떵하겠다. '범위의 경제'적인 아이돌그룹이다. '프로듀스 101'도 어쩌면 이와 같다.
모두가 빛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눈물 많고 정도 많은 소녀들이다. 정식 아이돌로 데뷔해서 활동해봐야 몇년을 하겠는가. 길어야 20대 후반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20대 후반에 빛이 사그라든다. 실제 별은 수십 수억 광년을 빛나지만 스타는 빛의 수명이 짧다. 지금 아이돌계에서 '어르신' 대접을 받는 SES나 핑클의 맴버들도 밝게 빛나던 과거를 얼마나 그리워하던가. 길어봐야 10년도 안되는 시기의 일인데 말이다. 짧게 빛나는 스타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프로듀스 101'의 소녀들은 매일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가 짧게 알고 있는 스타의 삶이 얼마나 빛이 나던가. 많은 아이돌 출신 소녀들이 연기로 제2의 광명기를 이어가려고 하지만 몇이나 성공하는가.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연기 보다는 외모 때문에 캐스팅 됐다는 비아냥이 항상이다. 많은 돈을 벌지만 인생의 총량으로 따지면 보통의 영광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모두가 빛났으면 한다. Mnet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꿔 101명을 모두 데뷔시켰으면 좋겠다. 101명의 흙수저가 모두 금수저가 됐으면 좋겠다. 힙겹게 노력하며 피는 꽃을 가련해 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의 본디 마음이다. 착하고 순수한 마음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 빛나라, 프로듀스 101.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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