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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우중의 기업가정신' 이다



  못난 기업가 김우중이 돌아왔다. 그가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책을 통해 다시 돌아왔다. 최근 자신이 설립한 아주대 강연장에서 그는 조국의 선진화와 통일을 목표했으나 아직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자신이 30대에 대우를 창업했다며 40~50대도 아직 늦지 않은 나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한성실업이라는 무역회사를 다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69년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그가 만든 자본금 500만원짜리 대우실업은 30년뒤 자산 77조의 공룡이 됐다. 전성기의 대우는 41개의 계열사와 396개의 해외법인을 거느린 기업왕국이었다.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금에 그의 기업가정신을 필자가 다시금 되돌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원천기술 하나 없이 리더십 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궜다는 점에 있다. 생전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김우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신격호 회장은 껌 팔아 롯데를 일궜고, 연암 구인회 선생은 치약을 팔아 LG를 세웠다. 그 말을 한 정주영 회장 역시 50원 짜리 동전 하나로 조선소를 세웠다. 정 명예회장은 김우중을 아무 것도 만든 것 없이 남의 것을 훔쳐 기업을 한 '존경해서는 안되는 기업인'으로 꼽았다. 편집자적 시각으로 볼 때 기술 하나 없이 남의 것을 배껴 전 산업분야의 2인자를 꿰찬 것 역시도 눈여겨 봐야할 기업가정신이다. 그의 마지막 역시 재계 2위의 대기업가 였다. 


  그의 기업가정신의 백미는 철저한 2인자 정신이다. 어짜피 1인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2인자로써 철저히 그 뒤를 밟는다. 1인자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면 엇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그를 따라갔다. 대중이 스티브잡스와 같은 혁신적인 1인자라는 몽상에 빠져있을 때, 그의 2인자 정신은 빛을 발했다. 그 조차도 1인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헌데 그도 아마 자신이 1인자는 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1인자의 자리 대신에 모든 산업분야의 2인자를 택했다. 망한 기업 대우의 리더십을 깎아내리고 싶은 사람도 많겠지만, 전성기의 김우중은 20만여명의 대우 직원을 먹여 살렸다.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은 아직도 산업계에 남아 있는 대우의 흔적들에 있다. 지금은 두산에 넘어간 대우중공업 부터 대우증권,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GM대우 등 김우중이 남긴 기업들은 아직도 남아 그를 추억하게 한다. 지금 우리 기업들은 어떠한가. 주력품목에 목매며 신시장 개척에 대한 노력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였다. 삼성이나 LG, 현대 등이 북미나 유럽시장을 파고들 때 그는 다른 시장은 선택했다. 북미나 유럽에서 1인자기업들과 경쟁에서 어짜피 밀릴 것이라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금 대기업들이 열심히 유혹하고 있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시장을 김우중은 먼저 택했다.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다. 그가 만약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돈독한 우대를 바탕으로 자원개발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면 재계 판도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동남아는 전성기 세계의 공장이었던 동북아를 대체할 만한 싸고 유능하며 성실한 인력의 창고다. 지금도 베트남에서는 김우중이 환영받는 인사다. 베트남 최고의 5성 호텔의 이름은 대우호텔이다. 사상을 가리지 않았던 그의 시장개척 정신은 보신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 기업들이 배워야할 자세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든 건 8할이 근면성실함이다. 김우중의 전성기 활동 모습 중에 많이 보이는 것은 자는 모습이다. 재벌총수니 빠져서는 안될 행사도 많았을 것이고, 영양가가 없으면 그는 잠을 택했다. 잠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항상 뛰어다니고 바쁘게 움직였다. 저녁을 다섯번이나 먹었다고 한다. 저녁내내 그룹 간부들과 회의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다섯번 먹을 정도면 낮에는 발로 뛰고 저녁 내내 회의로 여가를 보낸 셈이다. 정말 불꽃같이 살았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에는 초기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했던 그의 버릇에 있었다. 여기서 주목이다. 한 사람의 기업가정신으로 41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우를 세웠다. 가능성이 있는 시장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점에 먼저 들어갔다. 중소기업, 하청업체 등꼴 빼먹는 대신에 1인자 뒤에서 그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시장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그렇게 김우중은 기업왕국을 만들었다. 그는 M&A의 귀재였다. 그가 아직까지 기업을 하고 있었다면 페이스북을 먼저 인수했을수도 있다. 항상 앞서보는 그의 기업가정신이 적어도 욕은 먹지 않아야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신주의에 빠져 주력산업에 매몰된 국내 대기업의 현실, 시장이 포화되자 약자의 영역까지 넘보는 양아치자본주의, 적어도 그에게 그것은 없었다. 그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고 했다. 만약 대우가 살아남았고 죽을 때가 되서 자서전을 낸다면 제목은 이렇게 썼으리라.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만들어서라도 한다, 라고 말이다. /납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