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8일 열린 2013 동아시아컵 한일전은 축구경기이기도 했지만 역사논쟁의 장이기도 했다. 자신들이 식민지 지배를 했던 나라에 축구경기를 보러 와서 군국주의의 상징은 욱일승천기를 든 일본인도 있었고,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열사의 대형 플래카드가 등장하는가 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의미심장한 구호도 나부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에 더해 마치 붉은 횃불이 불타오르는 듯한 날이었다. 7월 31일자 일간지 1면에 실린 기사도 이채롭다. 조선일보는 ''한국 民度' 들먹인 日本각료'라는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세웠다.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이 30일 한일전 플래카드와 관련 "그 나라의 민도가 문제가 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된다는 내용이다. 시모무라 문부상이 꼬집어 말한 민도는 국민수준을 말한다. 29일에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시킨 히틀러의 수권법을 배워 개헌을 추진하자"고 망언을 내뱉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뭐라한다'는 촌철도 새삼스럽다. 타국의 국민수준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정치수준부터 점검해볼 필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애둘러 표현했다. 해묵은 독도 영유권 야욕부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그를 따르는 각료와 정치인들이 연일 내뱉는 망언과 우경화 행보는 식민지 시대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헌법을 개정해 군대와 다름없는 자위대에 정식으로 '軍'이라는 칭호를 주려 하면서, 그 목적이 위기에 닥친 동맹국에 파병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 주장도 있었다. 이쯤에서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5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했다. 5·18 군발포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등 주요 현대사에 대한 내용이 빠진 책들이 버젓이 교과서라는 옷을 입고 학생들에게 안겨지려 한다. 사실 일본을 욕하기 앞서 우리 조차도 역사에 대한 제대로된 확정이 미비된 상태다. 왜곡을 할 수 없으니 누락을 하는 뉴라이트 교과서와 6·25가 남침이네 북침이네 하는 논란까지 좌우로 나뉘어 하나 뿐인 역사를 양쪽을 해석하고 있다. 역사인식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사방치위원회'라 불려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교통정리를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지난해 국사의 수능필수과목 채택을 두고 말이 많았다. 대통령까지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나섰으니 관련부처는 더욱 바빠졌었다. 7월 31일자 조선일보 11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와 새누리당, 교육부가 검토 중인 역사교육 강화는 총 4개 안이 있었다. 첫째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 둘째 기존의 한국사검증시험을 보게 하고, 고교 학생부에 기재해 대입에 반영하는 것, 셋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한국사 표준 시험을 치르게 하고 '통과 또는 탈락'으로 평가해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것, 마지막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표준화된 시험을 마련해 고교별로 치르게 하고 5개 등급을 부여해 학생부에 기록, 대학별로 반영하는 것이다. 방법론은 다양하지만 국사를 대입에 반영하는 틀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같다. 새누리당 7월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 주요내용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사가 2005년도에 수능에서 빠진 표면적 이유는 점수 위주의 학생선발을 개선하고 대입에서 수능 준비 부담을 줄이자는 일련의 교육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가 수능에서 제외된 이유는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이 가장 큰 골자였다. 작금은 입시 부담 감쇄와 올바른 역사 교육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상반되는 시점이다. 역사논란 만큼이나 역사교육에 대한 방향도 교통정리가 필요하게끔 느껴지는 대목이다.
역발상으로 대입입시가 부담되는 이유는 한가지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하는 모든 학업에 대한 평가가 당일에 끝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과거 수능도입 초기에는 연 2회에 걸쳐 수능을 실시했었다. 그러던 것이 연 1회로 줄었고 이에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험을 망친 우등생들은 1년을 소위 '꿇어서' 대학에 가야 했다. 점수가 조금 아쉬운 학생들도 1년을 '꿇어서' 좋은 대학을 갈려고 재수를 선택했다. 사정이 이러니 국사가 부담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올만 하다. 이쯤에서 입시부담 완화와 역사교육 강화라는 두 명제를 모두 충족할 만한 안을 마련해야 한다.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방안을 만들어 보자.
첫째는 대입수능시험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다. 하루에 12년치의 학업과정을 평가받는 현행에서 벗어나 고2학생에게 수능시험을 볼 수 있게 해 고2·고3에 걸쳐 총 2회의 수능시험 응시기회를 주는 방안이 있다. 또 연 1회 실시하는 수능을 연 2회 실시해 수험생이 자기에 유리한 점수로 대학을 진학할 수 있게끔 해주는 방안도 있다. 둘째는 역사파트를 입시에서 아예 떼서 국어+국사+국민윤리와 묶어 별도의 고사를 치르는 방안이다. 토익시험처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한국인기본소양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다. 물론 국어와 국민윤리도 수능에서 아예 분리를 시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매달 한국인기본소양평가를 실시해 응시자의 시험성적에 맞춰 일정한 등급을 부여한다. 응시자는 목표 대학이 정한 한국인기본소양평가 등급을 채우기 위해 수차례 시험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는 대입 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체의 채용 시에 활용될 수도 있고 외국인 귀화시험을 대체할 수도 있다. 수험생은 국어+국사+국민윤리는 평소에 공부해 일정 등급을 마련해놓고 남은 입시기간 동안 수학 과학 영어 등에 매진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입시부담이 그만큼 줄어들면서 역사교육은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다. 비단 수험생 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 아니기에 전 국민의 역사교육 강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기업의 승진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 활용할 유인도 있는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명언을 다시금 새겨지는 즈음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을 생각하면 약간 씁쓸한 맛을 다신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귀한 시대이고 그로 인해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때다. 역사를 배우고 후대에 가르치되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현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임무는 우리 세대에 있다.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의 말에 따르면 "국교(國敎)와 국사(國史)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을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로렌스 베인스(lawrence Baines)의 기사 '단어 수가 줄어드는 세상, 언어의 미래를 결정하는 다섯 가지 트렌드(A world of Fewer Words? Five Trends Shaping the Future of Language)'에 따르면 현존하는 6900개의 언어 가운데 향후 100년 내에 절반 이상이 소멸한다고 점쳤다. 현재에도 세계 인구의 95%가 400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나머지 5%를 사용하는 종족이 점차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언어와 역사는 한 민족의 대들보다.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나 바로 가르치기를 해야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언어나 역사나 그 동태는 같은 모양을 가진다. 공자는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왕이면 '올바른' 옛 것을 익히고 '온전히' 새 것을 알게 했을 때 그 민족의 역사는 앞으로 더 밝아오지 않을까 한다. /납삽 <이 글은 지난해 7월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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