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고2나 고3이었을듯 싶다. 당시만해도 잠버릇이 꽤나 험했다. 한번 잠들면 시체처럼 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그날도 온 방안을 뒹굴렁 뒹굴렁하고 자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문지방에 배를 깔고 잤었다. 문지방에 배를 깔고 있었던 것을 알았으니 잠이 좀 깼나보다. 뭔가 더러운 느낌이 들었다. 가위다. 생각했다. 가위에 눌렸구나 어서 깨야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가위를 눌리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서 잠에서 깨어난다. 문지방에 배를 깔고 누웠었는데, 어떤 손이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더러웠다. 어떻게 흔들어서 깼다. 가위는 더러운 기분이다. 깨고 나면 다시 자기 참 힘들다.
▶ 때는 옮긴 직장의 회사 선배의 초청으로 모 단체장과 함께한 야유회 자리였다. 평소 기시감이 남다른 나는 잠자리가 불편했다. 분명 기분 나쁜 잠자리였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든든한 혹은 뚱뚱한 회사 선배가 둘이나 있으니 안심하고 옆사람이 있으니 별탈없겠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느꼈다. 여자인거 같은데 하는 느낌이었다. 여자 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한효주 닮은 거 같다. 요새 한효주가 핫하다. 그 형체는 조용히 다가와 내 머리맡에 무릎을 꿇었다. 왜 무릎을 꿇었을까. 모르겠다. 그러더니 대뜸 이마에 손을 대고 점점 얼굴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문득 가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깼을 때는 든든한 혹은 뚱뚱한 회사 선배가 나에게 그랬다. 너 왜그래?
▶ 몇년이 흐른 뒤 가족 모임에서 동생들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귀신얘기 삼아 했다. 친동생은 이야기를 듣곤 그런 소리를 했다. 귀신이 형을 아네. 형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서 깨는 걸 아니까 그랬던 거 아냐 라고 했다. 섬뜩한 기분이었다. 히트는 얼마 전 이었다. 친척동생이 집에 와서 잤다. 내일로 여행을 하던 참이었다. 무궁화를 타야 하기에 새벽 같이 일어나서 나갔다. 동생이 나가고 다시 잠에 들려고 하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놓고 갔나 보구나 줘야 되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문득 몸을 움직여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가위에 눌렸던 것이다.
▶ 가위귀신은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머리를 누르더니 핸드폰 벨소리를 성대모사를 한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사후를 생각하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한편으론 섬뜩하다. 가위에 눌리면 불경도 외우고 기도도 한다는데 안한다. 왠지 따라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다. 누군가 기도를 따라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귀신은 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됐다. 있다면 과학이 무지하리라.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귀신이 아니라면 내 또 다른 자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숨기려 하고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장 악독한 자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혼자 물음을 한다. 나의 가장 악랄한 너는 대체 누구야. 대답을 한다. 나는 너의 일부야 혹은 전부이기도 하지. 앙심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 나는 루시퍼야. 너의 쌍둥이 형제이기도 하지. 미카엘 너는 나를 벗어날 수 없어.
'Co-Culter Club > 쓰다, 길게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팔매] 동자승 (0) | 2013.09.16 |
---|---|
[돌팔매] 채동욱 '父情과 不訂' (0) | 2013.09.13 |
[我非我趣] 개성만리 (0) | 2013.08.27 |
[돌팔매] 구업 (0) | 2013.07.26 |
[돌팔매] 대전발 19시24분 (0) | 2013.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