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있었다. 딸이 있었다. 딸은 생후 두살에 뇌성마비에 걸렸다. 아버지는 딸을 창피해 하지 않았다. 임지를 자주 옮겨 다니면서 모임도 잦았던 초임검사는 부부가 함께해야하는 자리에는 꼭 딸을 데리고 다녔다. 다소 산만해서 모임 분위기를 망칠까봐 염려돼 빗을 꺼내 머리를 빗기며 아버지는 딸을 품속에서 늘 재웠다. 부모의 사랑이 지극했을까. 병원에서 선고했던 날보다 더 오랜 세월을 딸은 곁에 있었다. 딸은 22살을 채우고 부모곁을 떠났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짧게 살다간 딸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된 인간의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검찰의 꽃, 총장에 올랐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다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 한 검사가 있었다. 평검사 시절 마약쟁이와 조폭들과의 옥신각신을 통해 공력을 쌓은 그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팀에 합류하며 특수수사에 발을 들였고, 12·12사태와 5·18혁명에 대한 검찰측 논고를 작성했다. 그후 '경성비리사건'을 수사하던 중 여권실세에게 눈도장이 찍혀 좌천과 한직을 전전했다. 부활은 2006년부터 찾아왔다. '현대자동차 비자금사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두루 도맡으며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후에 헌정 최초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천거로 검찰의 꽃, 총장에 올랐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다소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 변호사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그리삼의 '이노센트 맨'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1988년 메이저리그 투수를 꿈꾸던 론 윌리엄슨은 웨이트리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아 사형을 언도 받았다. 론은 억울함을 벗기 위해 트럭 한대 분량의 항소자료를 보내고 수차례 자살도 시도했지만 그는 살인자의 이름으로 9년여를 살았다. 그러던 1997년 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는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론을 돕겠다 나섰다. 론의 억울하다함이 간단명료하고 유일한 이유였다. 공방 끝에 DNA검사로 진범이 잡혔다. 범인은 론을 지목했던 목격자였다. 1999년 4월15일 론은 교도소 문을 넘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사형선고 11년 만이었다. 메이저리그 투수에 도전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다. 1992년 한 법대에서 시작한 무죄입증 프로젝트 '이노센트'는 그릇된 법봉의 판단 속에서 많은 선량한 이들을 구해냈다. 1992년부터 20년 동안 사형수 18명을 포함해 총 311명의 자유를 찾아줬다. 선고받은 형기는 3160년이었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평균 13년 분량의 계절을 보냈다. 지금도 이노센트 프로젝트에는 매일 백여통의 편지가 오고 있다.
▶ 법은 엄정해야 한다. 불의에 맞써 선의를 지키고 힘없는 이들을 힘있는 자들로부터 도와야 한다. 법은 차가워야 하는 것이 제1법칙이지만 때로는 따뜻함을 지닐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를 갖을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집 아들들을 부러운 듯 보는 남편을 보며 아내가 남편에게 오히려 먼저 청했을 수도 있다. 자식 하나는 불의로 먼저 보냈지만 남은 자식은 지키고 싶었을 수도 있다. 펜과 칼의 매서움 속에서 세상에 까발겨지고 아이얼굴에 '부정한 자식'이라는 주홍글씨가 쓰여지길 원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세상엔 끼워 맞추면 말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다. 물론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는 가정에서 나온 추론이다. 그 옛날 중국삼국시대에 조조는 형수와 사통하고 뇌물을 받은 가후를 중용했다. 사람이 아니라 능력을 본 것이다. 도덕성이라는 잣대가 혹자에게는 여유롭지만 혹자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안타깝다. 아까운 칼을 잃었다. 법의 엄단함을 세워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눈여겨 봤지만 스스로 눈밖으로 나가버렸다. 슈퍼집 아저씨가 혼외자식이 있어도 수군거리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소명할 기회를 너무도 인색하게 주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납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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