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종된 레드오션을 위하여
국내에 흑백TV 1호는 금성전자(현 LG전자)가 1966년 8월에 세상에 내놓은 VD-191이다. 동네에 하나 있는 흑백TV 앞에 앉아서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을 듣고, 김일의 박치기에 온동네가 통쾌해하던 시절이 50여년 전이다. 컬러TV는 1980년에 출시됐다. 출시 당시 컬러TV는 센세이션이었다. 총천연색으로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구미의 유명인사들의 잘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TV가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과정이 14년이 걸렸다.
현대는 더욱 격변이다. 우리는 벽돌휴대폰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그나마도 초창기에는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갖고 있는 전유물이었다. 1G에서 2G에서 넘어가면서 휴대폰은 일상 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2G가 고물기술이 되고 3G가 개발되면서 우리는 010홍역을 치뤘다. 더욱 극적인 격변은 애플의 '아이폰'이다. 애플이 2007년에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을 개발하여 출시했다. 그로부터 3년 애플을 따라잡기 위한 삼성의 노력이 '갤럭시S'를 만들어냈다. 애플과 삼성의 기술격차가 스마트폰에서는 3년이 걸렸지만, 타플렛PC를 두고 두 회사의 출시일 차이는 단 2달이었다.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에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는 블루오션의 이론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2005년 한국의 김위찬 교수와 프랑스의 르네 마보안 교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시장'인 '블루오션'의 이론을 제시했다. 반대개념으로는 '기존에 경쟁이 매우 치열한 시장'인 레드오션을 제시했다. 그들은 기업이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으로 도약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재는 판이하게 다르다.
통상 한 제품이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거쳐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 중 도입기와 성장기가 블루오션, 성숙기와 쇠퇴기가 레드오션이다. 현재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으로 일컬어지는 전통의 산업경쟁의 이론이 와해될 지경이 됐다. 제품이 시장에서 성숙하기도 전에 격렬한 경쟁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아이패드와 갤럭시텝의 출시일 차이는 2달이다. 타제품이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가지 더 유의할 점은 기술력의 차이가 미묘할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통상 신제품이나 기술은 시장경쟁자에 비해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현대의 기술력은 경쟁사가 거의 동질적이다. 휴대전화 서비스업체들도 거의 비슷한 요금제에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불편함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적어졌다. 그렇다면 어떠한 환경적 요인이 '기술적 사생아'를 양성하는 '레드오션의 홍수'를 초래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 왜 '기술적 사생아'를 양산하는 레드오션 사회가 왔는가?
현대사회는 '완전정보의 사회'로 점점 도래하고 있다. '완전정보의 사회'란 '모든 이해관계자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의 사회를 뜻한다. 과거 하나의 기술을 카피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스파이를 보내고 엄청난 자금을 쓰고, 혹은 그 기술을 뛰어남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써야했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 신제품에 대한 기술의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다. 스파이는 내부에 존재하며 기술유출에 대한 대가는 온라인뱅킹을 이용하면 된다. 소비자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니즈를 기업들은 인터넷에서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기업들의 출발선상이 같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것이 별 다를 봐가 없는 것이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한 기술개발은 어찌 보면 동질된 결과를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또, 한 개의 제품이 퇴출되고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는 기술전환기도 극적으로 빨라졌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제품들에 대한 뉴스를 전해 듣는다. 때로는 너무 많아서 알아차리기도 전에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하루 수십만건의 어플이 태어나고 다음날 유령이 된다. 공산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제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차기작을 연구해야 한다. 아니 이미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차기작에 대한 준비를 마친다. 이 세태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인류의 기술진보가 이미 정점에 다달았다는 판단마져 하게 한다.
마지막 요인으로 '나눠 먹을 파이'가 줄어든 비극적인 현실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으로 선진국에서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그 다수는 구매력이 낮은 후진국들이다. 신기술의 수요처인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들은 점점 '나눠 먹을 파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한다.. 어떤 업종에서는 그 파이마져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협감 마져 느끼게 된다.
3. 레드오션의 극복을 위한 기다림의 필요
그렇다면 이 '신기술이 홀대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향후 이 추세가 계속 되겠지만, 두번의 '대전환기'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번째는 BRICs를 위시한 신흥국의 약진이다. 신흥국의 폭발적인 인구가 신제품을 살만한 구매력을 갖게 되는 순간, 시장은 극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블루오션과 같은 시장을 찾으려면 기업들은 일단 신흥국 공략에 나서야 될 것이다. 선진국에서 쇠퇴하면서 가격이 낮아지는 제품을 신흥국에 공급하여 시장을 점유해야한다. 후일 신흥국이 극적인 변화를 격어 과도기적 선진국의 단계에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전세계적인 블루오션의 순풍이 불 것이다.
두번째는 '순환경제 체제'로의 전환이다. 자원을 채취하여 가공하고 소비하는 전통의 경제는 큰 비용부담을 갖게 된다. 그래서 기업은 그 비용 때문에 신시장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충분히 보장이 돼야 그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재활용, 재사용으로 압축되는 '순환경제'의 체제로 전환된다는 제품생산에 대한 비용이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완전정보의 사회가 되면 정보비용마져 줄어들 것이다. '기업이 비용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경쟁사회'는 그 자체로써 신세계가 될 것이고, 신세계에 걸맞는 신경제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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