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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국민참여당, 당신들이 구하는 노무현의 정신이 먼지 솔까말하셈



  정치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능한 정의를 내리기는 참 어렵다. 그저 높은 자리에 앉아서 국회서기보들한테 반말이나 찌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정치인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정치라는 것의 본 정의를 찾는 것은 어려울 지도 모른다. 애써 정의를 찾으러 노력해본다면 가장 근본적인 정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이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운 정의로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플라톤적인 생각일 뿐이고, 보다 원초적인 정의를 나는 내리려 한다. 정치는 거짓말쟁이들이 가장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경합이다. 물질적인 욕망이나 권력에의 추종 따위의 본심을 얼굴 가죽 깊숙이 묻어버리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하겠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유권자들 역시 인물을 뽑는다라고들 하지만 속으로는 가장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그래서 정치는 위대한 트라우마적인 쑈이다. 정치는 하나의 예술이고, 그 예술의 무대는 사회이며, 그 예술의 주연과 조연들은 바로 현 시대인들이다. 카테고리의 첫 글을 쓰면서 자그만케나마 정치에 대한 소견을 이야기해보았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국민참여당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서 이만 줄여야 할 듯 하다.

  국민참여당, 정말이지 대한민국 역사 유례의 가장 거창한 당명이지 않은가, 그 흔한 민주라는 두 글자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앞글자에 국민, 뒷글자에 참여라는 얼토당토 안은 단어를 달았다. 사실 한국정치사에서 괜찮고 쓸만한 당명을 먼저 정치한 사람들이 다 써먹고 더럽혀버린 결과, 친노계열은 딱히 정체성을 드러낼만한 당명을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캐치프라이드인 참여를 가져다 써서 국민참여당이라는 기형아가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국민의 정치 참여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히 기본 쏘스이다. 유명한 맛집의 다시다와 미원과 같이 없어서는 안되는 기본 재료인데, 헌정 이후 이제서야 그 가치를 드높인다는 정당이 생겨났으니 어찌보면 한국 정치사에 비극아닌 비극일 수도 있겠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친노진영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우선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되짚어보고 필자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가치에 대해서 먼저 논한 다음에 국민참여당이 왜 쑈인가에 대한 입장을 밝혀보려 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지지난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노무현과 상대인 이회창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말이지 피가 말리는 승부를 했었던 거 같다. 가히 51대 49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가 왜 당선 이후에 자신도 될 줄 몰랏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다. 북한에 총 몇방 쏴달라고 달러 몇푼 준게 중간에 걸려서 시도도 못해보고 끝난 북풍 사건부터,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의혹, 고속도로에서 들켜버린 돈궤짝 까지 어떻게 보면 이회창은 팔다리가 잘린체 선거를 한 셈이다. 이렇게 팔다리가 잘린 이회창과 전 정부의 지원까지 등에 입은 노무현의 싸움이 가히 박빙이었으니, 그 일일의 사건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이회창이 당선될 수도 있었겠다. 혹자들은 국민들의 사회 변혁에 대한 강한 열망이니 머니 하면서 아릅답게 치장하지만, 필자는 그 정의를 부정한다. 필자도 당시 노무현에 미쳐서 인터넷을 뜨거운 프라이펜 거닐듯 돌아댕기던 사람이었지만, 몇해 지나고 정신을 뚝 차려보니 그 당시의 선거의 모습은 마치 세대 갈등의 양상과도 같았었던 것 같다. 안정을 추구하는 구세대와 구세대가 못 미더운 신세대들 간의 대결, 그리고 그 대결의 결말은 노무현의 참여정부라는 헌정사의 유례없고 앞으로도 상당히 찾지 못할 결과를 만들고 만 것이다.

  참여정부, 참여정부라는 말은 참 좋다. 하지만 그 지난 속사정을 좀 돌이켜 보자, 참여정부라고 해서 국민들이 나라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길이라는 것이 있었냐에 대한 질문이다. 그 흔한 자문위원회 같은 것에 중산층-서민을 대변하는 일반시민이 성명을 기재한 적이 있었냐고 묻고 싶다. 어지간하면 무슨무슨 시민사회단체장, 무슨무슨 대학교수들, 일부 기업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뿐 그 외의 어떤 시민에게도 참여라는 기회를 준 적은 없다. 그래서 국민참여정부라고 하기 보다는 소위 좌빨이라고 불리는 진보386계열의 좌빨참여정부라고 읊어야 더욱 옳다. 노무현, 언제나 생각해도 속이 쓰린 그 분이 열린우리당 한창 국회 과반의석 차지하고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할 때, 검경 수사권 분리 내지는 검찰 수사권 제한 같은 정책을 시행에 옳기거나 4년중임제 개헌을 성공했더래도 그가 그렇게 초라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할 수가 없었다. 그도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였고, 기득권은 아직 완고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그 모든 것을 시도해보려 했었다. 열정이 있었고 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난상토론을 펼치고 국민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국민을 향한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해먹는 것은 나쁘지만, 한나라의 통수권자였던 사람에게 몇억안되는 돈으로 그 사람의 마지막 남은 순결까지 빼앗은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보다 더욱 더럽고 추악한 정권이 덜 더러운 정권을 향해서 쏜 화살이었다. 그래서 안타깝다. 갈길이 멀기에 노무현에 대한 가치정립은 추후로 미루고 노무현의 가치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보자면, 필자가 내린 노무현의 가치는 순수한 열정이다. 바보스러운 순수한 열정이 그가 남긴 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참여라는 것은 사회가 보다 성숙해진 이후에 이루어질 가치이다. 사실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정착한지 20년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가 남긴 유물은 "적어도 그렇게 되게 만들기 위한 순수한 열정" 정도로 정의를 마치는게 옳지 않을까 한다.

  이제 그가 남긴 "적어도 그렇게 되게 만들기 위한 순수한 열정"을 만지작 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국민참여당이라는 다섯 글자가 쓰려진 명함을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순수한 열정으로 노무현을 계승하고 싶어서 모였을까 아니면 빼앗긴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 옛 주인의 이름 석자를 빌려 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솔까말해서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후자다. 국민참여라는 위대한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는 사람들이 이제껏 머를 해왔냐는 것에 대해서 묻고 싶다. 차라리 민주노동당처럼 강성하게 파업현장에서 배를 깔고 누웠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국민참여를 이름으로 걸었으면 그에 걸맞는 것을 일반 국민인 나에게 직접적이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지껏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민주당 2중대 정도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말하는 참여정신을 옳바르게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할까하는 생각을 해보려 한다. 참여민주주의를 옳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필자는 참여당이 좀더 과감하고 악착같았으면 좋겠다. 그 썰은 두가지 방향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첫째로 트라우마적 쑈의 멋진 홍보자가 되어야 한다. 써커스장의 피켓맨처럼 각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참여네트워크라는 라디오방송국도 개국하고 유시민씨를 비롯해서 유명정치인이나 계통연예인들을 출연시켜서 방송도 하고 참여당의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여넷을 만들어서 네티즌들의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고 이메일서비스나 블로그, 카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국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 "사람 사는 세상" 줄여서 사람세상이라는 신문도 만들어서 좀 배부하는 것도 어떨까한다.

  둘째 정당구조를 개선해서 진정으로 국민들에 당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현 민주-한나라의 양당의 구도를 답습해서는 그들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백뿌리의 갈대보다 한뿌리의 참나무가 더 올곧은 법이다. 당내 당원 참여시스템을 정비해서 일당백의 진성당원을 육성하는 것 그것이 참여당의 미래를 위한 두번째 대안이다.

  참여당은 할 수 있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우선은 국민과 호흡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또 민주적 정당운영을 통해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1년도 버티지 못하는 미숙아정당이 되고 말것이다. 필자는 지방선거를 겨냥한 급조정당이라는데 더욱 무게를 두고 있지만, 불쌍한 전 대통령을 생각해서 한번만 더 속아보고 싶다. 그들이 진정으로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라면, 국민들이 적어도 오늘 보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을 수 있게 해야한다. 어설프게 민주당과 합당을 해서는 안된다. 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조금씩 다져나가야 한다. 

  대한민국 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안이다. 집회와 투쟁으로 얼룩진 빨갱이-진보는 반동일 뿐이다. 그 대안의 자리에 국민참여당이 앉을 수 있을까하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흥미로운 구경거리이다. 관객은 무명배우보다 이름있는 배우를 선호한다. 보다 이름있는 진보의 그대들이 앞으로 어떤 무대를 펼칠 것인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해서 마칠 때가 되니 앞으로 별로 필요 없을 글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대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대한민국은 진보나 보수나 대안이 없어 허둥데는 상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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