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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ulter Club/論

돈까스, 돼지국밥, 약간 서글픈 음식이야기

  밥상 위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돈이 많다하여 하루에 10끼를 먹을 수 없고 돈이 적다 하더라도 3끼면 충분하다. 물론 음식의 질이나 양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번외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지구 상에 수많은 인종과 문제가 존재하기에 음식문화도 각 지역과 나라의 특성에 맞춰 달리 발전해왔다. 그중 눈여겨 볼만한 것이 '구황'과 관련된 음식문화다. 커다란 쇠고기를 덩어리채 구워내 칼과 나이프로 맛있게 잘라먹는 것은 분명 있는 자, 즉 부자의 음식문화이자, 부국의 전유물이다. 우리는 비록 삼시세끼를 적당히 챙겨먹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백톤의 잔반들이 버려지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백명이 굶어죽고 있다. 그래서 부족한 사람들이 챙겨먹었던 음식들이 있어 그 사례를 몇가지 챙겨보려 한다. 게중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도 있고 모르고 지나친 것들도 많다.

◆ 전후 일본인의 배를 채워주던 돈까스

  포크커틀렛은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 간을 한 다음 밀가루와 빵가루를 씌워 소량의 기름으로 지져내거나 튀겨내는 요리다. 우리가 흔히 '돈까스'라 부르는 것은 일본인들이 포크커틀렛을 그들식으로 '돼지 豚'과 커틀렛의 일본식 표현인 '까스'를 합성해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라는 표현이다. 서양식의 포크커틀렛은 거대한 고기튀김에 가깝지만, 일본의 돈까스는 일종의 두툼한 부침과 유사하다. 전후 일본에서 적은 고기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고기를 얇게 썰고 밀가루와 빵가루를 듬뿍 묻혀 아예 기름에 담궈 튀겨내던 것이 바로 돈까스다.

  물론 일본인들이 밝히는 돈까스의 유래는 조금 다르다. 명치 28년 창업한 동경 긴자의 "도와테이" 2대 주인인 기타모토씨가 명치 37년경에 만들었다는 설과 명치 38년 '시마티 신지'라는 사람이 '포크카츠'라는 이름으로 내놨다는 설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엔 그들이 말하는 유래나 필자가 해석한 이유나 둘다 맞다고 본다. 본디 명치유신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의 먹거리 문화도 따라 들어왔겠다. 당연히 포크커틀렛도 그 대열을 따라 들어왔을 것이고, 처음에는 서양의 포크커틀렛과 같이 두툼한 고기를 지져 내왔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먹을 것이 귀해지면서 고기는 점점 얇아지고 반죽은 점점 두꺼워졌을 것이다. 적은 고기로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이유에서 탄생된 돈까스, 그것은 어쩌면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 했던 전세계 어머니들의 마음과 닮았다.

◆ 부산 피난민들의 한스러운 역사, 돼지국밥

  한국만큼 탕류 문화가 발달한 곳도 없다. 탕이 발달한 것은 육류가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고기맛을 느끼기 위해 뼈와 고기를 넣고 끓여 나눠먹게 된 것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은 소의 연골, 섯밑(혀밑살), 만하(지라), 콩팥 등의 내장과 고기를 넣고 푹 고와서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다. 머리편육이 들어가 비싼 살코기를 사용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남녀노소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부산, 마산, 밀양, 대구 등지에서 많이 먹는 돼지국밥은 이와 유사하다. 돼지머리와 뼈 그리고 고기를 넣고 삶아 육수를 낸 뒤, 수육을 썰어 부추무침과 함께 얹고 다대기를 탄 뒤 밥에 말아 먹는 것이 돼지국밥이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부산 지역에 돼지국밥집이 거의 없었지만, 미군 주둔 이후 군부대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과 재료를 넣고 끓인 국밥집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원래는 가리국밥 같은 이북쪽 음식이지만, 월남 후 내려온 평양 아바이들에 의해 부산에 정착했다는 설도 타당하다. 뼈와 부산물을 이용하기에 가격도 저렴하고 칼슘이나 단백질 등 영양소가 많아 전후 허약해진 조선인들의 원기를 회복시키기에는 으뜸이었겠다. 괴뢰군의 총칼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피난온 아무 죄없는 백성들의 한이 서린 음식. 돼지국밥은 이제 부산지방의 향토 명물이 됐다. 노동자의 쓰린 속을 달래주며 내일의 희망을 한 국자씩 떠내는 그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 그저 소박한 감자와 생선튀김, 피쉬 엔 칩스

  영국에는 피쉬엔칩스라는 음식이 있다. 영국여행을 가서 피쉬엔칩스를 먹어봤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저 영국문화를 겉핡기로 즐기다 왔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로 옛 영국에서는 게으름뱅이의 작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감자를 먹으면 게을러진다 여겨 많은 귀족들은 이를 멀리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아일랜드에서는 감자를 즐겨먹었는데, 이로인해 대기근기에 많은 인명을 잃기도 했었다. 그런 감자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은 싸고 푸짐하고 열량이 높은 음식을 원했다. 그래서 가난뱅이들의 탄수화물 공급원인 감자와 면직물 공업을 통해 부산물로 얻은 면실유, 바다에서 잡히는 대구나 할리붓 등 싸구려 흰살 생선들이 재료가 된 피쉬엔칩스가 탄생했다.

  이런 피쉬엔칩스는 1888년 영국 전역에 1만 2000개의 튀김집이 성업했을 정도로 인기를 끓었다. 1910년에는 2만 5000개로 두배나 늘었다. 결국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유일한 전통음식인 피쉬엔칩스는 대략 19세기 중반 경부터 먹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라서 곱게 보일 뿐이지 사실 피쉬엔칩스는 감자와 생선튀김에 지나지 않는다. 한끼를 제대로 먹는다고 정의받기 보다는 허름한 곳에 쭈구리고 앉아 그저 때우는 식의 음식이 피쉬엔칩스였다. 그것이 이제는 양식레스토랑에 가면 있는 고급요리가 됐으니 최초 감자와 생선을 튀겨팔던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하게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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