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구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 여야는 지난 대선에서 한목소리로 시․군․구청장 등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애초 여야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로의 예속화 심화, ▲정당공천제로 인해 기초선거구의 단체장과 의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 국회의원의 수하 노릇을 하는 점, ▲뒷돈이 오가는 등의 투명하지 못한 공천 과정을 이유로 들어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4․24재보궐선거는 그 시험대였다. 기초선거구에 대해 무공천 결정을 한 새누리당은 경기 가평, 경남 함양 등 2곳과 기초의원 선거가 열린 서대문구 마, 경기 고양시 마, 경남 양산시 다 등 3곳을 개표한 결과 새누리당과 가까운 무소속 후보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공천제를 유지한 민주당은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냈다.
현상은 마치 기초선거구 정당공천폐지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은 모양새다. 허나 내년 6․4지방선거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전국 단위로 선거가 치러지는 점이 문제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후보가 난립하게 된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교육감까지 1인8표제를 행해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당공천제의 폐지는 심사숙고해야할 지역 일꾼들을 결정하는데 큰 장애다. 10여명이 나올 경우 적어도 50~60명에 대한 자질판단을 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에서 정당 구분도 돼 있지 않으면 유권자는 오로지 감에 의해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극복하고 인물 위주로 판단해도 무리가 있다. 기초단체장이 10여명이 나올 경우, 대표성에서 문제가 된다.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1000~2000표 만으로도 당선이 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당선된 후보가 지역을 대표한다는 것에서 반발이 생길 수도 있다.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1~3위 정도 되는 후보를 놓고 결선투표를 한다고 하면 막대한 선거비용이 들어간다. 정치개혁을 위해 깃발을 들긴 했으나 오히려 민주주의가 뒷통수를 맞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여성을 비롯한 배려대상자에 대한 공천도 문제다. 자칫 지역구 국회의원은 전부 남성, 비례대표는 전부 여성의 기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기초선거구와 광역선거구를 가릴 것 없이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돼 후보를 2명씩 내는 복수공천제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정당표방제를 한다고 했을 경우도 후보 난립의 위험이 있다. 적당히 걸러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당별로 2명의 후보를 낼 경우 유권자의 선택선은 기존의 10여명에서 6~7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 정당에서 상향식 공천을 통해 1순위와 2순위 자에게 모두 공천권을 주면 국민의 선택권이 강화된다. 기존에 단수 공천은 정당이 결정하면 국민이 이를 번복할 수 없었다. 정당이 찍어준 사람을 찍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복수공천제에서는 여당 성향을 가진 유권자는 여당이 낸 2명의 후보 중 본인이 지지하는 1명의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단순히 인물비교를 할 경우, 여당 성향이라면 선택지가 2개로 확 줄어드는 결과다. 또 토착세력화된 기초선거구의 판세를 뒤엎을 수 있다. 몇몇 지역은 중앙당과 지역당협의 비호를 얻은 후보가 내리 3선 4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능력이 많고 적음, 혹은 맡은 바 임무를 잘하건 못하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복수공천제를 도입하면 ▲특정 당에 대한 애호가 깊은 지역에 정당교체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인물교체는 가능하다. 특정 당에서 계속 밀어주는 후보를 유권자들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찍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그 후보가 재임 중 문제가 많았다면 그 후보 대신 같은 정치 성향을 지닌 다른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요약하면 ▲후보 난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유권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으며, ▲정당교체가 안되면 인물교체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뒷돈이 오고가는 비리는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또 공천제가 유지되니 기존에 배려가 필요한 계층에서 적당한 공천권을 나눠줄 수도 있다. 이에 정치권은 기초선거구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공천제 폐지 대신 복수공천제를 도입하고 이를 국회의원 및 광역선거구까지 확대해야 한다. 한시적인 정당공천제 폐지는 언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정화시켜야할 윗물은 내버려두고 아랫물만 뒤적거리는 꼴이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비롯한 복수공천제의 전면 도입은 우리나라 정치의 수질을 한층 더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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